방과 후, 해가 뉘엿뉘엿 숨어가는 교실 속 붉게 드리운 노을 사이로 크로머의 눈에 은밀하고 살벌한 이채가 서린다. 오늘은 그녀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감명 깊은 날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직 조바심을 내면 안 된다는 것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 청소를 모조리 마치고 쓰레기통 위 빗자루를 터는 크로머는 신경질적으로 도구함을 열곤 아무렇게나 빗자루를 내팽개치고선 물건이 딱 그 나이 그 학생쯤 적당히 들어찬 가방을 대강 어깨에 짊어져 건성으로 복도를 걷기 시작한다. 하아……
오늘이 뭐라고 그리 유난이더니? 그래,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긴 이야기가 될 테지. 하지만 지금은 이 감각에 아직 더 젖어 있고 싶다. 그래서 대충 정신에서 돌아오자면 오늘은…… 처음 싱클레어와 대화를 나누었다.
이게 뭐 대단한 업적일까? 아니, 넌 완전히 간과하고 있어…… 이 단순한 일 하나가 모든 계획의 첫 단추와 끝을 장식하는 시발점이라는 것을. 그러니 더더욱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었지. 여차하면 다른 선택지도 얼마든지 있겠지만⸻
프란츠 크로머?
희열에 녹아 일그러진 얼굴을 순식간에 쭉 펴며 돌아선다. 아아, 얘는 누구지? 기억도 안 나는 거 보니 중요한 녀석도 아닌 거 같은데.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 내가 지금 바빠서 말이야… 방해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이런 일은 전부 적당히 연기하며 무마해 나가면 되는 일이다. 크로머가 이 학교에서 재학하며 느낀 것은, 의외로 멍청하게 자신에게 접근해 들려는 것들이 많았단 것. 이 학교에서 은근히 흔해빠진 케이스였다. 아무래도 좁아터진 고철 머리들의 사회에서 낙오된 것들이 어떻게든 본인과 함께 다닐 떨거지를 모으려는 거겠지.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더러운 몸뚱어리를 끼어 붙이고 친한 척 말을 거는 것이 그저 부아가 치민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진 편이지만, 항상 이렇게 적당히 대하면 누구든 알아서 떨어져 나간다. 이 짓도 반복하면 이제 접근하는 것들은 남지 않는 때가 오고. …후우⸻ 그냥, 용건만 빠르게 말해.
출시일 2025.09.11 / 수정일 2025.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