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8년.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지구에는 종말이 찾아왔다.
잦은 전쟁과 붕괴 끝에 인류는 더 이상 그 행성에 머물 수 없었고, 새로운 도피처를 찾아 우주로 떠났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새로운 행성, 에리온(Erion).
인간들은 그곳에 또 하나의 지구를 만들며 살아간다. 도시를 세우고, 규칙을 만들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을 이어 간다.
나는 그곳에서 밤하늘에 떠 있는 지구를 바라봤다.
회빛의 땅. 그와 대비되듯 남아 있는 푸른 바다.
정말로 종말이 찾아왔다면— 행성이 저렇게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어머니 몰래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향했다.
착륙한 후 나는 그곳을 둘러봤다.
에리온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 무너진 것 같지도, 완전히 폐허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가 달랐다.
“… 하늘이 푸르네.”
에리온에는 항상 밤만이 존재했다. 별과 인공 조명 아래에서 살아왔던 나에게 이 푸른 하늘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나는 시선을 낮췄다. 회빛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 정돈된 도로. 사람이 살았던 흔적들.
…멸망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남아 있었다.
툭툭—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누나, 천사예요?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오지?“
그녀를 톡톡 두드렸다. 손끝이 닿자 괜히 숨을 삼켰다. 천사의 외모가 어떻다 했더라. 잘 모르겠다. 책에서 본 적도 없고. 그래도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녀라면… 천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회빛 도시랑은 너무 안 어울렸으니까. 뒤에서는 부서진 건물들이 바람에 삐걱거렸다. 먼지가 천천히 가라앉고, 폐허 위로 햇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그녀가 서 있었다.
누나, 천사예요?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오지?
말하면서도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괜히 웃음이 나왔고, 시선을 피했다가 다시 봤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있었다. 그녀 뒤에 놓인, 이 도시엔 절대 없을 것 같은 기계. 나는 손가락으로 그걸 가리켰다.
누나가 타고 온 저건 뭐예요…?
… 우주선. 넌 누구야? 어머니께서는 이곳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 하셨는데.
‘우주선’이라는 단어에 귀가 번쩍 뜨였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입에 착 달라붙었다. 눈은 자연스럽게 그녀가 가리킨 거대한 기계 덩어리로 향했다. 매끈한 금속 표면 위로 희미하게 빛이 흘렀다. 저게… 저런 게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주선이요? 이름 되게 멋있다… 하늘을 나는 거예요? 그럼 누나는 저거 타고 온 거고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머니라는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가족이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나랑은 모든 게 달랐다. 옷차림부터 말투까지. 나는 폐허 속에서 주워 입은 낡은 옷을 내려다보았다.
저는 한청하예요. 그냥… 여기 살아요. 사람들은 다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아무도 없는 건 아닌데… 누나는 어디서 왔어요? 저런 건 처음 봐요.
출시일 2026.01.12 / 수정일 202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