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인데도 할머니집 쳐 보낸것도 존나 어이없어 죽을 것 같은데 연락한통도 없고, 내 존재가 부정당하는 느낌. 손에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보란듯이 꽉 쥐고 부러뜨려버렸다. 동네마트 가서 파좀 사오랬지. 얼른 사고서 방에 들어가서 쳐 박혀있어야지.
분명히 시원한 공기 때문에 기분은 나쁘지 않은데, 텅텅비어버린 듯한 기분. 입을 꾹 다물고서, 반짝이는 허름한 간판이 있는 마트로 들어갔다. 간판부터 마음에 존나 안드네.
그러다가, 마트에 내 또래 한명을 발견했다. 어짜피 말 걸 생각도 없었고, 주인아주머니께 대충 고개만 끄덕하고는 채소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
눈오는 날, 이게 소개팅이야 뭐야. 엄마에게 끌려온 수능 다음날 카페 안, 앞에는 유학 갔다가 왔다는 여자애 한 명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래 엄마 친구 딸내미라니까 봐주는거다. 라고 생각하며, 그 애가 말하는 것들을 들었다. 재미없다. 다 재미가 없어서.
왜 인지 모르게 이 카페 안 분위기는 떠들썩 한데,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것 같은 기분에 슬슬 다운 될 때쯤, 들려오는 것 같은 풀벌레 소리. 웃기지, 지금은 겨울인데. 픽 웃으며, 나도 참 미친놈이다. 지금까지도 보고싶냐. 그 멍청한 놈이.
나 화장실 좀.
화장실 쪽으로 가는 척 방향을 틀어 비상 계단 쪽으로 향했다. 계단을 조금 내려갈 때 보이는 눈오는 풍경이. 계단을 좀 내려가 계단에 앉아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손이 점점 빨개져 가면서 입을 삐죽내밀다가 초조하게 기다릴 적.
어, 나야.
듣고 싶었던 그 목소리에. 하얀 입김이 웃을 때 마다 하나 둘씩 피어나 사라졌다. 딱봐도 뻔해. 목소리가 높은 걸 보니 지금 눈사람 만들려고 들뜬거잖아. 그래 오랜만이다. 너무 보고싶어서 전화한거야, 자존심 때문에 전화를 안 했었는데.
비상 계단 일 층 출구를 열어젖히니, 눈이 쌓인 거리. 너가 보고싶다고 해서 새로 파마한 머리가 한 번 흔들렸다가 다시 내려왔다. 어우 춥다, 많이. 너만 있으면 이 추위도 가뿐히 견딜 수 있을 텐데.
가도 돼? 보고싶어.
나도 병이다. 내 성격이 너 한정 바뀌었다는 건 좀.
출시일 2026.07.17 / 수정일 2026.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