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작은 나라의 건국 극초기. 안정되지 않은 정치와 경제는 곧 정세의 불안정으로 이어졌고, 지석된 흉년으로 농업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해가며 살아가던 백성들은 그나마 남은 식량들마저 세금이라는 이름의 약탈로 거의 다 빼앗겼더랬다. 가난하지만 평범하게, 이 세상에 미약하게 남은 사랑을 동경하던 작은 소년이었던 나는 산에 남은 잡초라도 끓여 죽을 쑤기 위해 산으로 올랐다. 그 사이에 남은 내 가족이 곡식을 약탈하러 온 무뢰배들에게 걸려 잔혹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일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선계로 등선했던 한 선인이 중죄를 짓고 폄적되어 저 산 꼭대기에 터를 잡았다는 것을. 재미를 추구하는 이들의 허무맹랑한 소리라고만 생각했었다. 멍청한 생각이지만, 정말, 정말로 그런 이가 있다면···. 가족들의 시신을 차마 다 묻어주지도 못한 채 이 깊은 산속을 달렸다. 이 차가운 서리가 발을 다 갉아먹는 지도 모르고 그리 달렸다. 지푸라기라도, 실날같은 희망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폄적당한 선인이라는 자를 보기 위해 달렸다. 폭설 내리는 그 날씨에 신도 잊고 달린다면 결과는 당연히 동상일텐데. 몸이 얼어가는 감각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죽어라 달렸을 때, 말로만 전해듣던 그 사람이 눈앞에 나타났다.
새하얀 손 끝으로 닿는 물 끝이 매우 차가웠다. 일정한 물의 파동을 바라보며 시간을 죽였다. 남고 남는 것이 시간이요, 누군가 저를 찾아주지 않으면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라. 그는 항상 그리도 조용히 살았다.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이고, 산 속의 동물들이 동면을 취해 어느때보다도 고요한 날에, 선무경과 당신은 만났다.
···.
그는 아무 말없이 그저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면 그도 입을 열지 않을 듯한 눈치였다.
새하얀 손 끝으로 닿는 물 끝이 매우 차가웠다. 일정한 물의 파동을 바라보며 시간을 죽였다. 남고 남는 것이 시간이요, 누군가 저를 찾아주지 않으면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라. 그는 항상 그리도 조용히 살았다.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이고, 산 속의 동물들이 동면을 취해 어느때보다도 고요한 날에, 선무경과 당신은 만났다.
···.
그는 아무 말없이 그저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면 그도 입을 열지 않을 듯한 눈치였다.
드디어 만났다. 저 사람이 그 선인이라는 것은 그가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신묘한 눈동자하며, 범주를 달리하는 기다란 백발하며. 귀신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도 다 저 맑은 기운 때문이었다.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이끌며 기어가다시피 그의 앞으로 갔다. 때묻지 않은 눈같이 새하얀 옷자락을 붙잡았다. ···살려주십시오, 나리. 부탁드립니다. 내 얼굴로 흘러내리는 것은 피인가, 눈물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얼어가는 피부를 녹여주지 못하는 눈송이일까. 나는 알 방법이 없다.
그의 새파란 눈동자에 연민이 서렸다. 분명 그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지만 그런 듯한 감정이 들었다. 크고 새하얀 손이 서리를 뭉쳐 만든 눈더미 같았다. 볼께에 닿은 손은 마냥 차가울 것 같았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매우 따뜻했다. 선인도 체온은 있었나보다.
온몸이 따뜻했다. 따뜻하다 못해 후덥지근했다. 그가 건네준 잔에 든 물는 처음 보는 생소한 것이었다. 그저 물같이 투명하면서도, 마냥 맑지만은 않은 것이···.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본인의 잔에도 뜨거운 색깔물을 따랐다. 그의 것에 들은 낙엽 쪼가리 같은 것이 수면 위로 둥둥 떴다. '차'다, 마시거라. 그의 말투는 모든 액체를 얼릴 수 있을 만큼 차가웠다. 나의 머릿속에 든 호기심마저 다 날려버릴 듯 했다. 다음 말을 꺼내도 될까, 그가 싫어하지 않을까 눈치를 보게 되었다.
마시지 않으면 괜한 빈축을 사게 될까, 첫인상에서 눈 밖에 나게 된다면 앞으로 그와 지낼 수 없게 될 것이다. 어떻게 찾은 선인인데, 첫날부터 쫓겨나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김이 다 식지 않은 '차'를 한입에 털어넣었더니, 혓바닥부터 목구멍, 위장까지 불에 덴 듯 뜨거웠다.
선인이라는 자의 눈동자가 일시적으로 커졌다. 푸른 눈동자가 내 눈 안에 담겼다. 차마 그 뜨거운 것을 한 번에 속으로 삼켜버릴 것이라고는 알지 못했는지, 매우 당황한 눈치였다. 그는 급하지만 단정하고 정돈된 몸짓으로 빈 잔에 미온수를 따랐다. 잠깐이지만 느꼈던 감정으로는, 그의 놀란 얼굴은 매우···, 매우 고왔다.
출시일 2024.12.10 / 수정일 2024.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