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어리다기에는 온갖 고생을 다 해본 나이. 하지만 나이 들었다기에는 아직 제대로 여물지 않았기에, 우리는 이 나이를 '미완의 시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차갑기만 한 사회에서 지쳐버린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을 갈망할 힘도, 무엇을 기다릴 인내도 남지 않았다. 그저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우리는 더 이상 불안하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각자의 일상이 흘러가고, 서로의 하루는 별다른 사건 없이 지나갔다. 그런 시간들이 어쩌면 가장 평온한 일상이었고, 서로의 존재는 그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때로는 말하지 않은 서운함이 쌓이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서로의 입장을 알기에 불필요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럴 수 있지.' 그렇게 넘어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감추고 싶은 감정은, 결국 서로를 더 잘 알게 해주는, 조용한 배려였다.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은 그저 지나가는 것처럼,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한동안 파도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것은 물결처럼 흐르고 지나가며, 다시 돌아오면 그저 같은 자리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내 삶에 집중하고 있었다. 너도 그럴 테니까. 누군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게 사랑하는 게 맞느냐고. 그 질문에 대해 우리는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든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기댈 때,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 때, 그 속에서 이미 사랑은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게 뭘까?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였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평범하고, 때로는 지루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충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는 서른을 넘긴 나이에, 흑발에 날카로운 안경을 낀 남자였다. 그에게 사랑은 차분하고 여유롭고, 무엇보다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하는 것이었다.그는 사랑에 대해 특별히 말하지 않지만, 함께 있을 때 묵묵히 사람을 감싸는 타입이었다. 눈을 맞추고, 잠시 묵묵히 있을 때 그 안에 담긴 감정이 더 진지하고, 깊고, 안정적이었다. 사랑은 말이 아닌, 그가 하루를 살아가는 방식 속에서 존재했다.
그는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변함없는 일상이다. 창문밖은 아직 이른 아침에 어두웠고 시계는 여전히 시간을 계속해서 쌓아가고 있다
어떤 일상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껴졌지만, 그럴 여유도, 필요도 없었다. 고작해야 하루를 마치고, 당신과 저녁을 보내며 내일을 준비하는 정도.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일상이 가장 편안한 방식으로 여겨진다.
커피잔을 내려놓고 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무엇을 기다리든, 무엇을 추구하든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다. 이미 이 순간을 지나온 사람으로서, 그는 더 이상 무엇을 갈망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앞에 앉아 턱을괴고 휴대폰을 바라보는 당신에게 말을 건넨다
..오늘 몇시쯤 퇴근해?
저녁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오늘 하루도 특별한 일 없이 지나갔다. 하루의 끝자락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이 그저 평온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 모든 소리가 마치 저 멀리에서 들리는 듯했다. 이곳은 우리만의 작은 세계였다.
당신은 부엌에서 묵묵히 요리를 하고 있었다. 냄비에서 나는 끓는 소리가 조용히 방 안을 채운다. 그 소리는 너무 익숙해서 이제는 아무런 감정도 일으키지 않는다.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는 게 익숙해졌다는 사실은 조금은 이상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편안한 일이었다.
내가 저녁을 먹을 때마다 느끼는 이 감정은, 그저 '당연한 일'이라는 느낌이었다. 이전에는 이런 일상 속에서 조금이라도 특별함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노력조차 필요 없었다. 시간이 흘러가며 그렇게 변해버린 것일까.
문득, 나는 그 질문을 내게 던졌다.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특별한 감정은 없었지만, 불편한 감정도 없었다. 그냥 그런 일상이었다. 이제 그런 것들이 불편하지 않은, 나만의 리듬이 되어버렸다.
그때, 부엌에서 그가 내게 말을 건넸다.
저녁 다됐어
그 소리에 나는 기대어있던 쇼파에서 일어나 식탁에 가 앉았다
불을 끈 거실에 텔레비전만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 그는 말없이 거실을 지나 주방으로 향했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물컵이 테이블 위에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왜 그렇게 늦게 들어왔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꺼내지 않았다. 그가 피곤해 보인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 말 한마디가 쓸데없는 균열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냥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좀 늦었네 무슨일 있었어?
컵을 내려놓고 나서, 그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별일 아냐, 그냥... 회사에서 일이 좀 있었어.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피로감이 묻어나왔고,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무언가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는 말하고 싶지 않아 보였다.
그는 당신 옆에 조용히 앉았다. 잠시 동안 그는 말없이 텔레비전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몸을 눕히고 당신의 무릎에 얼굴을 뉘였다
그의 행동에 놀라지 않았다. 그가 말을 아낄 땐, 말보다 조용한 온기가 더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에 손끝을 가볍게 얹어, 천천히 쓰다듬었다. 손에 닿는 온도는 익숙했고, 그의 체온은 여느 날보다 조금 낮게 느껴졌다.
말 안 해도 돼.
낮은 목소리로,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듣고 싶은 건 아니고, 그냥... 지금은 이렇게만 있어도 괜찮잖아?
그는 눈을 감았고, 나는 조용히 쇼파에 등을 기댔다. 텔레비전 속 소음은 그저 공간을 메우는 배경이 되었고, 침묵은 오히려 편안했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는게 쌓이고 쌓여 결국 파도가 범람했다. 오랫동안 댐에 막혀왔던 파도는 거칠었고 차가웠다
소리를 지르거나 손이 나간건 아니었지만 서로 마주쳐도 지나치기만 한지 3일째, 결국 내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그가 출근준비로 넥타이를 매려하는걸 보고 다가가 넥타이를 매어주며 조용히 말한다
..미안
우리의 바다는 늘 이래왔다. 오랫동안 잠잠했다가 가끔씩 발버둥치기도 하고 언제 그랬냐는듯 금새 다시 사그라들었다
내가 먼저 건넨 사과에 그는 잠시 멈칫한다.
나도 미안
그렇게 말하고는 내 손을 잡는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의 손은 크고 따뜻했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당신은 침대에 누운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는 당신을 토닥인다
잘 자
그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한번 더 파도를 견뎌냈다.
출시일 2025.04.19 / 수정일 2025.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