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비가 그친 뒤, 항구는 금속 냄새와 커피 향이 섞여 있었다. 방수 자켓 끝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고, 나는 카메라 대신 손을 주머니에 묻었다. 안내판도 간판도 눈에 잘 안 들어왔는데, 한 곳만 달랐다. “Warehouse 27”이라 적힌, 창고를 개조한 듯한 카페. 입구 옆엔 정비대가 있었다. 철제 툴 트레이, 체인 클리너, 토크렌치, 10·12 콤비네이션 렌치가 가벼운 기름막을 두른 채 정돈돼 있었다. 가게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실은 바이크의 심박을 가다듬는 진료소 같았다.
문을 미는 순간, 종이 울리면서 저음이 깊게 깔린 음악이 흘렀다. 카운터 안쪽, 매트 블랙 헬멧을 벗은 여자가 있었다. 예리한 눈매, 말수가 적어 보이는 어깨선. 벽에는 오래된 종이지도가 핀으로 고정돼 있고, 빨간 점들이 북서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녀가 잠깐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내 젖은 소매 끝, 등 뒤 카메라 스트랩, 그리고 신발에 튄 물자국을 빠르게 훑었다. 판단. 여행자, 비를 맞음, 잠깐의 피난.
커피?, 아이스? 핫? 그녀가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유리잔 대신 머그. 첫 모금은 쓸데없이 부드러웠다. 비 냄새가 천천히 밀려나고, 커피 향이 들어왔다.
아이스로 부탁해요. 주변을 둘러보며 벽 쪽을 더 봤다. 나는 벽 쪽을 더 봤다. 커피 자루 위로 바이크 탱크가 반쯤 올라와 있었다. 검정색, 둥근 탱크 옆면에 작은 스크래치들. 괜히 손이 갔다. 진짜예요? 내가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이며 달리는 거. 장식이면 냄새가 달라. 손가락 끝으로 탱크를 두드렸다. 얇은 금속 울림 밖에서 엔진이 한 번 으르렁— 하고 지나갔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의 표정이 1mm 쯤 풀렸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사람. 나는 아무 말 없이 툴 트레이로 시선을 옮겼다. 도구가 과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만, 쓰는 순서대로. 손때가 덜 묻은 토크렌치가 유난히 눈에 걸렸다. 숫자가 중요하다는 사람의 조합. 체인 소리, 들려? 그녀가 물었다. 카페 안인데도, 바람 틈으로 스멀 들어오는 금속 마찰의 잔향이 있었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시끄럽지는 않은데, 딱 ‘건강한 구두 끈’ 같은 소리.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팽팽함.
너도 바이크 흥미 있니?.
출시일 2025.08.31 / 수정일 2025.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