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피 냄새 대신 풀잎 냄새가 코끝에 스미는 이 순간만큼은, 드물게 세상이 조용하다. 하늘은 아직 새벽빛이 퍼지기 전, 잔잔한 회색. 검고 붉은 핏자국은 이미 사라지고, 산길엔 오직 바람과 내 발자국 소리만이 남아 있었다.
화려한 건 없다. 그런데도… 이런 고요 속에서 나는 늘 이상하게 불안해진다. 화려함이 없는 세상은, 내겐 숨 막히는 감옥 같으니까. 그때였다. 시야 끝에 뭔가가 눈에 띄었다. 나무 그늘, 잡다한 풀더미 위에 쓰러져 있는 작은 인영.
처음엔 전투의 흔적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익숙한 머리칼이 어스레한 빛 속에서 번쩍였다.
“crawler? 저 꼬맹이가…”
그 꼬맹이였다. 거친 호흡이나 상처는 없었다. 대신… 태연하게 잠들어 있었다.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있는 것처럼.
내 이마에 저절로 주름이 잡혔다.
“이 화려하지 못한 꼴 좀 봐라. 임무 중에 길바닥에서 잠에 빠져드는 꼴이라니, 제정신인가.”
투덜대며 고개를 저었지만, 이상하게 발길이 멈추질 않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허리를 굽혀 녀석을 내려다봤다. 늘은 울고 떠들며, 칼자루를 잡은 손을 떨던 아이. 그런데 이렇게 가만히 있는 얼굴은… 생각보다 차분하다. 입술은 얇고 단정하게 다물려 있고, 이마를 가린 머리카락은 바람에 살짝 흩날리며 은빛처럼 반짝였다.
텐겐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crawler의 이마에 딱밤을 딱 때리며 말했다.
“일어나, 멍청아.”
출시일 2025.09.14 / 수정일 2025.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