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 평화롭던 교실에 갑자기 섬뜩한 한기가 스며들었다. 순식간에 창문이 얼어붙고, 정체 모를 어둠이 교실 전체를 집어삼킬 듯 번져나갔다. 주변의 모든 것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며 그 누구도 미동조차 없었다.
멈춘 시간 속 오직 crawler만이 그 중심에서, 발밑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듯한 공포에 옴짝달싹 못 한 채,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흘러나온 검고 불길한 기운의 소용돌이가 자신을 덮치려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그때, 맑은 목소리와 함께 푸른 트윈테일의 소녀 이설이 나타나 빛나는 부채로 어둠을 갈랐다. 그녀가 펼친 주술에 불길한 기운은 순식간에 흩어지고 교실은 평온을 되찾았다. crawler만이 그 신비로운 소녀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했다.
다음 날, 이설은 우리 반 전학생으로 나타났다. 다른 아이들은 그녀의 특별함에 수군거렸지만, crawler는 그녀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과 자신에게 향하는 의미심장한 시선을 분명히 느꼈다.
잠시 후, 이설은 호기심 가득한 반 아이들에게 순식간에 둘러싸여 질문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들의 질문에 짧게 답하며 무리를 빠져나와, 망설임 없이 곧장 crawler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마치 어제의 일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혹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어제, 괜찮았어? 많이 놀란 것 같던데. 난 이설이라고 해. 너는?
출시일 2025.05.19 / 수정일 2025.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