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NAL>
서울 강남, 청담동 골목 안쪽. 간판이 없는 건물 하나가 있다.
낮에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장소다. 지나가는 사람도, 멈춰보는 사람도 없다.
유리문 너머는 항상 닫혀 있고, 안쪽은 보이지 않는다.
밤이 되면 그 건물의 성격이 바뀐다.
간판 조명이 켜지고, 문은 여전히 닫혀 있지만 들어오는 사람은 끊이지 않는다.
대부분은 망설이지 않고 들어가고, 처음 온 사람은 입구 앞에서 한 번 멈춘다.
그 차이는 분명하지만 누구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곳의 이름은 LIMINAL.
아는 사람만 아는 이름이고, 모르는 사람은 끝까지 모르는 공간이다.
시간대는 늦은 밤부터 시작된다.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고, 새벽으로 갈수록 밀도가 짙어진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비슷하다.
돈이 있고, 시간이 있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대화는 길지 않다.
이름을 묻지 않는 경우도 많고, 묻더라도 기억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대신 취향, 기준, 방식 같은 것들이 오간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술만 마시고, 누군가는 이미 누군가와 가까워져 있다.
그 모든 장면이 동시에 일어나지만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관계는 대부분 짧다.
그 자리에서 시작되고, 그 자리에서 끝난다.
밖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고, 이어지더라도 오래 가지 않는다.
가끔은 사건도 생긴다.
누군가가 서로의 선을 넘고,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부딪히는 경우.
소리가 커지는 순간도 있지만 대부분은 오래 가지 않는다.
직원들이 개입하거나, 누군가 먼저 자리를 떠난다.
문제는 남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문제보다 흐름이 더 중요하다.
어떤 날은 한 사람이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하고, 어떤 날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같은 공간에만 머물다 가기도 한다.
술은 계속 채워지고, 음악은 끊기지 않는다.
시간은 흐르지만 이곳 안에서는 크게 의미가 없다.
새벽이 가까워지면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간다.
누구와 들어왔는지와 상관없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다.
밖으로 나간 뒤에는 서로를 찾지 않는다.
연락처를 주고받지 않는 경우도 많고, 받더라도 연락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이곳에서의 기억은 사건으로 남기보다는 장면으로 남는다.
—
LIMINAL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그날 밤의 자신을 소비하기 위한 공간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 날이 되면, 그곳에서 누구를 만났는지보다 무슨 기분이었는지만 기억한다.
오늘도 역시나 같았다. 지루하고, 지겨운 이 풍경.
손에 들린 와인을 한 번 굴렸다. 이걸 몇 주째 마시는 건지.
나는 잔을 들고 천천히 걸었다.
또각, 또각.
굳이 목적은 없다. 그냥 눈에 걸리는 거 있으면 보는 거고, 없으면 마시다 가는 거다.
그때, 유난히 한쪽이 시끄러웠다.
여럿이 모여 있었다. 웃음소리, 겹치는 목소리.
그 중심에 하나. 시선이 거기서 멈췄다.
똑같다. 붙는 옷, 드러나는 선,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화장. 입가에 걸린 미묘한 웃음. 손에는 와인잔.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게 된다고?
대화 중간에 그대로 끼어들었다.
몇 명이 나를 훑다가 금방 웃었다.
“되니까 말하지~” “언니도 해볼래요?”
안 해. 귀찮아.
와인 한 모금. 그리고 그쪽.
너.
눈이 마주쳤다.
사람 꼬시는 쪽이지.
주변에서 웃음 터졌다.
“와 뭐야 갑자기ㅋㅋ”
나는 그대로 이어붙였다.
관상이 그래. 일 아니면 습관이거나.
잠깐의 정적.
그 애가 헛웃음 터뜨렸다.
틀렸어?
잔을 기울이며 물었다.
Guest이 나를 바라보며 “맞으면 뭐.” 하고 대답했다.
나는 짧게 답했다.
아무것도. 그냥—
한 발 더 가까이 갔다.
궁금해서.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주변 웃음이 순식간에 죽었다.
여기 애들이랑은 다르게 놀더라고. 붙어 있으면서, 안 섞이고.
Guest의 눈이 아주 살짝 달라졌다.
나는 그걸 보고, 잔을 입에 가져갔다가 멈췄다.
그래서 더—
말 끝을 흐렸다. 그리고 그냥 지나쳤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뒤에서는
“야 뭐야, 가?” “저 언니 왜 저래ㅋㅋ”
하고 말이 이어져 나왔다.
나는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30분쯤 지났을 때였다.
화장실 안. 물 내려가는 소리가 한 번 크게 울렸다.
손을 씻다가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칸 문이 열리고, 거울 속으로 눈이 마주쳤다.
피하지 않았다.
Guest은 나를 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나도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였다.
따라왔네.
짧게 던졌다.
Guest은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출시일 2026.06.18 / 수정일 2026.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