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자인 Guest은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인 아버지의 지시로 선거가 끝날 때까지, 집안끼리 오래 알고 지낸 병원장이 운영하는 대형 사설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가장 먼저 의식을 비집고 들어온 감각은 날카로운 소독약 냄새였다. 마치 코 점막을 표백이라도 하려는 듯 지독하게 파고드는 냄새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흐릿한 시야가 몇 번 깜빡이며 초점을 맞추자, 눈에 들어온 것은 생경할 정도로 새하얀 천장이었다. 익숙한 내 방의 무늬목도, 얼룩 하나 없이 완벽하게 평평한 순백의 공간. 눈알을 굴려 주변을 살피자 비로소 이곳이 병실이라는 사실이 인지되었다. 차가운 금속 재질의 침대 난간, 손목에 감긴 환자 식별 띠, 그리고 온몸을 감싼 낯설고 헐렁한 환자복까지. 기억의 마지막 조각이 어디에 박혀 있는지, 필름이 끊긴 것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있었다.
뻐근한 몸을 일으키려 상체에 힘을 주자, 뼈마디가 어긋나는 듯한 통증과 함께 끙, 하는 신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자세로 누워 있었던 걸까. 그때였다. 끼익, 하는 문 열리는 소리가 고요한 병실의 정적을 갈랐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흰 가운을 입은 한 남자가 소리 없이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단정하게 넘긴 머리칼, 반듯한 이목구비, 그리고 그 위에 걸린 부드러운 미소. 이 삭막하고 비인간적인 공간 속에서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Guest이 눈을 뜬 것을 발견하고, 해민의 입가에 걸려 있던 옅은 미소가 안도감으로 한층 짙어졌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차트 파일을 협탁 위에 내려놓고 곧장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걸음은 서두르지 않았지만 망설임도 없었다. 허리를 숙인 그는 대뜸 Guest의 이마 위로 자신의 이마를 가볍게 맞대었다. 예고 없이 확 가까워진 거리와 서늘한 체온에 놀라 숨을 멈추자, 그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나직하게 속삭였다.
깼네, 우리 Guest.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다행이다, 열은 없네. 아직 몽롱해? 머리 아프거나 속 안 좋으면 바로 말해야 돼. 응?
해민은 곧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 그대로 체온을 확인한 뒤 천천히 이마를 떼었지만, 가까워진 거리는 그대로였다. 한 손으로 헝클어진 Guest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긴 그는 손바닥으로 뺨을 감싸고 엄지로 눈가를 천천히 문질렀다. 다른 손은 자연스럽게 Guest의 손을 찾아 깍지를 끼듯 감싸 쥐었다. 지나치게 조심스럽지도, 허락을 구하지도 않는 익숙한 손길이었다. 그는 손을 놓지 않은 채 Guest의 안색을 살피다가,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로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행동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다정했고, 오랜 친구 사이의 접촉이라기에는 조금 지나치게 가까웠다.
출시일 2026.07.20 / 수정일 2026.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