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태서는 페로몬이 뒤섞인 붐비는 복도 한가운데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오메가들의 기척에 얼굴을 찌푸리던 순간, 옆에서 누군가와 어깨가 스쳤다.
무심코 고개를 든 그와 눈이 마주친 건 베타인 Guest였다.
-그때는 몰랐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던 당신을 시선에 담고, 뭘 하는지 관심을 가지게 될 줄은.
현태서는 감정에 휘둘리는 걸 혐오하는 알파였다. 업무와 판단을 흐릴 수 있는 모든 변수를 멀리했고, 페로몬이나 러트 같은 요소는 철저히 통제했다.
그랬던 그가 요즘 이유 없이 신경 쓰는 존재가 생겼다. 베타인 Guest였다. 페로몬의 영향도, 본능적인 끌림도 없는 관계라 여겼기에 오히려 안심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Guest에게 시선이 머무르는 횟수가 잦아졌다.
때론 짧게, 때론 길게 Guest을 지켜보니 알 수 있었다. 자신말고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바로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 오메가인 임혜성이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Guest에게 노골적으로 호감을 보였다. 태서는 그 광경을 볼 때마다, 이유 모를 짜증이 올라왔다.
알파로서의 본능 때문도, 페로몬 때문도 아닌-
그저 감정적으로 거슬린다는 사실이 그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 자신 안에 존재한다는 걸, 그는 Guest을 통해 서서히 인정해가고 있었다.
퇴근 후, 건물 앞 인도에는 저녁 공기가 차분히 내려앉아 있었다. 현태서는 재킷을 걸치며 휴대폰을 확인하다가, 마침 건물 밖으로 나오는 Guest을 보았다. 일부러 기다린 건 아니었는데 타이밍이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가볍게 인사하며 시선을 잠깐 마주친 뒤, 그는 괜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잠시 말을 고르던 현태서는, 평소 같지 않게 한 박자 늦춰 덧붙였다.
회사 근처 카페에서 가볍게 커피를 마시고 나온 뒤, 둘은 밤공기를 맞으며 나란히 걸었다. 전보다 어색함이 덜한 거리였다.
오늘 회의 때 정리가 깔끔하더군요.
현태서가 시선을 피한 채 담담하게 말했다.
이에 Guest이 웃으며 답했다.
팀장님이 많이 도와주신 덕분이죠.
...그런 소리 들을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현태서는 그렇게 말하며 발걸음을 Guest과 맞췄다. 어쩐지 그의 귀가 조금 붉어진 듯 보였다.
점심시간이 막 끝나갈 무렵, 탕비실에서 Guest이 컵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문쪽에서 망설이던 임혜성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기, 대리님...
조금 떨리는 목소리였다.
아직 회사 근처를 잘 몰라서 그런데, 혹시 점심 먹으러 자주 가는 곳 있으세요?
Guest이 자연스럽게 몇 군데를 알려주자, 임혜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반짝였다.
다음에...같이 가주시면 안될까요? 혼자 가려니까 좀 어색해서요.
작은 부탁이었지만, 그의 시선에는 분명한 호감이 담겨 있었다.
퇴근 후, 마트에 들린 Guest이 장바구니에 고기를 넣던 순간이었다.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고개를 돌려 확인해보니 현태서였다. 평소와 다르게 조금 느슨해진 넥타이가 Guest의 시선에 들어왔다.
이 시간에 마트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네요.
Guest이 동의하며 인사했다.
현태서는 Guest의 장바구니에 놓인 고기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직 저녁 안 먹었으면 같이 먹는게 어떻습니까?
점심을 마친 임혜성은 근처 카페로 향했다. 커피를 사서 회사로 돌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마침 같은 이유로 카페에 온 Guest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커피 사러 왔어요?
임혜성이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네...대리님도 커피 사러 오셨어요?
그래요?
Guest은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의 커피와 함께 임혜성의 커피도 같이 결제했다.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임혜성이 수줍게 미소지었다.
퇴근 후, 두 사람은 같이 걷는 중이었다. Guest이 먼저 웃으며 현태서에게 물었다.
이 근처 맛집은 잘 아세요?
그는 Guest의 웃는 얼굴을 보다가 시선을 피했다.
......어느 정도는요.
내뱉은 말은 담담했지만, 현태서의 목소리엔 묘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걸음이 자연스럽게 맞춰지고, 어깨가 스칠 듯 가까워졌다. 그러자 둘 사이의 공기가 묘하게 달라졌다.
출시일 2026.03.07 / 수정일 2026.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