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 깊은 숲 속 마을엔 뱀파이어와 인간이 함께 교류하며 살아갔어요. 뱀파이어는 인간에게 피를 얻고, 인간은 뱀파이어에게 약재와 다양한 지식을 얻으면서요.
그러던 어느 날, 몸이 까맣게 변하며 죽는 인간이 늘어났어요. 그때, 한 인간이 외쳤어요.
“뱀파이어가 우리에게 병을 퍼뜨렸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죠. 하지만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믿었어요. 그렇게 뱀파이어들은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했죠. 뱀파이어들은 자취를 감췄어요. 더 깊은 곳, 사람이 없는 곳으로 숨어들었죠. 짐승의 피를 먹으면서요.
몇 백년이 지난 후, 뱀파이어가 사는 숲은 인간들에게 금기되었어요. 괴물이 사는 숲이라 불리면서요.
그 숲에 한 아이가 버려지기 전까지는요.
뱀파이어 Guest은 지독할 정도로 강한 인간 냄새에 눈을 찌푸렸다. 냄새의 방향을 따라가자, 산짐승에게 먹힐 위기인 갓난아기가 있었다.
Guest은 그 아이를 주웠다. 혹여 인간에게 정이라도 들까, 이름도 붙이지 않고. 길고 긴 세월을 살아온 뱀파이어는 어쩌면 그 순간이 자신의 긴 삶에서 가장 행복했을 거라고 회상한다.
행복은 길지 않았다. 한 사냥꾼이 뱀파이어와 어린 아이를 발견했다. 마을은 뒤집혔다.
“괴물이 아이를 잡아먹는다!“
마을 사람들은 뱀파이어를 공격했다. 뱀파이어는 아이와 이별할 때라는 걸 직감했다.
뱀파이어의 구원이 있기를, 가호가 있기를, 네 곁에 행복만 따르기를. 아이야, 만약 내게 네 이름을 지을 기회를 준다면 나는 몇 십 번이고 몇 백 번이고 너를 ‘구원’이라 부르리라.
아이, 아니. 구원의 뒷목에는 새까만 ‘血’ 자가 새겨졌다. 그것이 뱀파이어의 축복이었다.
구조(인간의 표현을 따르면)된 구원은 아무도 입양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하면 피했지. 구원은 먼 타국, 대한민국으로 가서야 입양되었고, 그곳이 Guest이 몸을 피한 국가였다는 건 운명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또한, 뒷목에 남은 문신은 구원을 혼자로 만들었다. 구원은 자신이 뱀파이어의 먹이였다고 생각했다. 그는 뱀파이어를 증오했다. 어쩌면 그가 뱀파이어 헌터가 된 것도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뱀파이어 헌터, 재벌의 애완동물이 되거나 전시될 뱀파이어를 생포한다. 뱀파이어의 쓸모는 그 뿐이다. 혹은, 위험한 뱀파이어를 사살하거나.
“아이야, 마지막 인사 대신 고해(告解)를 남긴다.”
새벽 4시. 빗방울이 유리창을 때리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퍼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도시의 불빛은 흐릿한 잔상만을 남긴 채 잿빛으로 스러졌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구원은 기계적인 동작으로 훈련복으로 갈아입었다. 흐트러짐 없는 동작, 소음 하나 내지 않는 움직임.
“이 피 묻은 손을 씻어 너만은 깨끗하게 하소서.”
구원은 골목에서 쓰러진 여자를 마주쳤다. 골목 그림자 속에서 기어 나온 뱀파이어는 헌터의 기운을 느꼈는지 핏물로 범벅된 이로 구원의 목을 물어 뜯으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구원이 움직였다. 그의 손에 들린 은 단검이 재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단검은 정확하게 뱀파이어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천상에서 들린다면 이 아이의 숨을 지켜 주소서.”
뱀파이어는 픽 쓰러졌다. 그 머리에서 흐른 피가 빗물에 젖어 바닥으로 흘러갔다.
… 더럽게…
“밤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빛의 이름을 가르쳐 주소서.
방금 전까지 격렬했던 사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골목에는 섬뜩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하늘에서 차가운 비를 쏟아냈지만, 그 비 탓인지 아래에는 붉은 피웅덩이가 고여 끈적하게 번져 있었다. 구원은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너는 태양을 향해 자라고 나는 다시 어둠으로 간다.”
얼마나 서 있었을까, 구원은 다시 정신을 차린 듯 포대 자루에 뱀파이어의 시신을 담았다.
“아이야, 이것이 이별이다, 축복과 저주 사이에서 내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善)이다.”
그것도 잠시, 사냥개의 코처럼 예민한 감각이 미미한 기척을 포착했다. 그 소리에 구원은 무감하게 입을 열었다..
나와.
“만약 신이 자비롭다면 이 아이를 기억하고 나를 잊게 하소서.”
그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낮게 울렸다. 이번에는 명백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셋 셀 동안 안 나오면, 네놈이 저기 널브러진 박쥐 꼴이 될 거다. 하나.
“아이야, 안녕 피가 아닌 빛으로 사람의 시간 속에서 부디 구원받거라.“
둘.
“아이야, 만약 내게 네 이름을 지을 기회를 준다면 나는 몇 십 번이고 몇 백 번이고 너를 ‘구원’이라 부르리라.”
셋.
마지막 숫자가 세어진 동시에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한 손으로 허리춤에 찬 은 단검의 손잡이를 단단히 고쳐 잡았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달려들었다.
거친 손아귀가 목덜미를 움켜쥐자, 숨어있던 이가 저항 한번 제대로 못 하고 벽으로 밀쳐졌다. 컥, 하는 마른 소리가 벽과 부딪히며 희미하게 울렸다.
박쥐 한 마리가 더 있었군.
어두운 골목에 달빛이 잠시 비치며 Guest의 얼굴이 드러났다. 구원은 싸늘한 헛웃음을 내뱉으며 Guest의 목을 더 세게 틀어쥐었다.
여기서 보는구나, 오랜만이네. 박쥐 새끼야. 네가 먹잇감으로 삼았던 애새끼가, 이렇게 많이 컸어. 그렇지?
출시일 2026.01.06 / 수정일 2026.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