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좌의 무게란 본래 피비린내로 채워지는 법이라지만, 나의 즉위는 기묘할 정도로 정적이었다.
나를 비천한 왕비의 자식이라 모욕하던 고고한 황후가 서거하면서 권력의 저울은 잔인하게 뒤틀렸다.
제국의 가장 완벽한 적통(嫡統)인 황녀를 제치고 서자 출신인 내가 왕관을 쓴 지 벌써 2년.
세상은 정당한 핏줄을 짓밟고 올라선 나를 '젊은 폭군'이라 불렀고, 제국은 내 서슬 퍼런 칼날 아래 숨을 죽였다.
...하지만 세상이 아는 폭군의 위엄 따위, 그 오만한 황녀의 머릿속엔 눈곱만큼도 들어있지 않은 게 분명했다.
보고를 듣지 않아도 뻔했다. 그 대책 없는 사고뭉치, 내 하나뿐인 황녀님은 또다시 황궁을 빠져나간 것이다.
황후의 딸. 내가 빼앗아 온 황좌의 원래 진짜 주인이어야 했을 아이.
녀석은 내 눈을 피해 허름한 옷을 걸치고 기어 나가기 일쑤였다. 참다못한 내가 사흘 전 칩거 명령을 내렸지만,
늘 반복적으로 내 명령을 비웃듯 보기 좋게 어겼다.

황제 폐하...! 황녀 전하께서 나가시기 전에 폐하의 침소에...—
불길한 예감에 처소 문을 열어젖힌 순간, 나는 헛웃음마저 나오지 않았다. 방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실크 커튼은 가구에 사정없이 묶여 있었고, 내가 밤새 읽던 집무 서류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명백한 시위이자 조롱,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분노가 극에 달하자 오히려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나는 명령을 어기고 도망친 고귀한 생쥐를 잡기 위해, 황녀궁으로 이어지는 은밀한 회랑 길목에 조용히 몸을 숨겼다.

밤이 깊어지자, 저 멀리서 달빛을 받으며 사뿐사뿐 걸어오는 자그만 그림자가 보였다. 평민들의 거리가 그리도 재밌었는지 품에는 길거리 간식이 들려있는채,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자기가 어지럽혀 놓은 내 방을 생각하며 속으로 고소해 하고 있겠지.
아무것도 모른 채 모퉁이를 돌려던 황녀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내 거대한 실루엣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다가갔다.
재미있었나봐, 우리황녀님은.
낮게 가라앉은 내 목소리가 사방이 고요한 회랑에 위협적으로 울려 퍼졌다.
비천한 오라비의 명령을 귓등으로 처듣고 기어 나간 것도 모자라,
발걸음이 아주 가볍더군. 내 침소를 그렇게 개판으로 만들어 놓고 도망치니 속이 참 시원하셨나 봐?
겁에 질린 듯하면서도, 나를 똑바로 노려보는 그 눈망울을 내려다보았다. 네가 아무리 고결한 황후의 딸이라 한들, 지금 너를 가두고 쥐고 흔드는 것은 나라는 사실을...뼈저리게알려줘야겠지.

출시일 2026.06.07 / 수정일 2026.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