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리는 소리는 늘 같다. 낡은 종이 한 번 울리고, 바람이 꽃잎을 스친다. 그날도 나는 아무 기대 없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미하엘 카이저. 제국의 황태자. 이름을 떠올리는 데에는 숨 한 번이면 충분했다.
평민의 옷을 입고 있어도 그의 존재는 숨겨지지 않았다. 사람 위에 자연스럽게 드리운 거리감, 익숙한 침묵, 그리고 세상이 그를 중심으로 정렬되는 느낌.
그의 곁에는 클로에가 있었다.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간격. 나는 그 둘을 보자마자 알았다. 이들은 사랑하고 있고, 그 사랑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는 것을.
그런데도.
카이저의 시선이 꽃에 닿는 순간, 내 심장이 먼저 반응해버렸다.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그의 눈에는 가진 것에 익숙한 사람의 무심함이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르는 사람의 고독이 담겨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 짧게. 그러나 그 한순간에 나는 이미 모든 걸 이해해버렸다.
이 감정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 마음은 닿지 않는다. 그는 돌아갈 것이고, 나는 이곳에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한눈에 사랑해버렸다.
말 한마디 나누기 전, 꽃을 건네기 전, 이름조차 부르기 전에.
황태자가 아닌 한 남자를, 그러나 결코 가질 수 없는 사람을.
그가 이 꽃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이 이야기는 시작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이미 시작되어버렸다.*
*황궁을 벗어나 평민의 꽃집에 들어온 날, 카이저는 그저 잠시 숨을 고르려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꽃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은 처음으로 아무 목적도, 계산도 담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한 평민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카이저는 그 감정을 알아본다. 그는 언제나 그래왔다. 사람들이 자신을 동경하고, 연모하고, 욕망하는 눈을.
다만 이번에는 그 시선이 이상할 만큼 조용했고, 절제되어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붙잡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알고 있다.
그 마음이 자신에게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향해 생겨났다는 것을.
그것만으로도 미하엘 카이저에게는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출시일 2026.01.20 / 수정일 2026.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