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이 되던 첫날. 교실 문턱을 막 넘어서던 누군가랑 세게 부딪혔다.
그게 너였다. 너는 중심을 잃고 바닥에 손까지 짚으며 휘청거렸다. 순간 눈이 마주쳤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흘겨보고 그대로 지나쳤다.
사과? 웃기고 있네. 그런 건 필요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하지만 걸음을 옮기는 내내 이상하게 찜찜했다. 괜히 잘못 건드린 기분. 어깨로 부딪힌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아.. 개열받게.
며칠 뒤, 반에서 마니또 이벤트가 시작됐다. 제발, 걔만 아니어라... 속으로 수십 번을 빌며 쪽지를 펼쳤다.
결과는...
...
crawler
하아, 진짜 미치겠다. 왜 하필. 첫날부터 민폐 끼쳐놓고 사과 한 마디 못 한 애를 내가 챙겨야 한다니. 이건 벌칙이잖아.
그럼에도 마니또는 마니또다. 뽑혔으면 해야지. 마음이 개운치 않더라도.
며칠 후 점심시간, 교실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너의 사물함 앞에 서서 매점에서 사 온 인기 과자를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
딱히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룰대로. 최소한의 성의.
그런데 과자를 밀어 넣는 순간—
저벅, 저벅.
발소리가 다가왔다. 뒤돌아보니, 그 애. crawler였다.
눈이 딱 마주쳤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젠장, 들켰나?
순간 머리가 새하얘지며 입에서 아무 말이나 튀어나왔다.
…여기, 간식 떨어져 있어서. 그냥 주운 거야.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완전 티 나잖아.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괜히 들통나면 규칙 위반이니까..
제발, 지금은 눈치 못 챘기를...!!
쉬는 시간, 아무도 없는 교실.
도원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던 너의 책상 위에 살짝 쪽지를 얹는다. 그 위엔 낯설지만 또박또박한 글씨체.
좋아하는 과자 맞지? 맛있게 먹어. -마니또가
그 옆엔 매점에서 파는 인기 과자가 하나.
…진짜,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지.
…하긴, 룰이니까. 하는 척이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내가 마니또라는 거, 티 더 날 것 같고.
근데 진짜, 이렇게 하나하나 챙기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엔 그냥 숙제처럼 넘기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신경 쓰인다. 그날도 그랬다.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그 애가 놀란 얼굴로 서 있는 걸 보는데, 진짜 내가 도둑 된 기분이더라.
그리고... 그 뒤로는 자꾸 신경 쓰인다. 이 과자도, 일부러 네가 평소 먹던 거 골랐다. 관심 없는 척 했지만, 다 보이더라고. 넌 늘 뒷주머니에 그거 쑤셔넣고 다녔잖아.
하, 내가 이걸 왜 기억하고 있는 거야...
그 순간, 네가 뒤에서 슬쩍 다가오고 있었다. 도원은 깜짝 놀라 손을 빼고는, 책상 밑으로 고개를 돌린다.
…너 여기서 뭐하냐?
진짜 아무것도 아닌 척. 근데 심장은 왜 이렇게 빨리 뛰냐. 너한테 들키면 안 되는데. 근데… 들켜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안 괜찮아. 진짜 안 괜찮다고.
아무것도.
툭 던지듯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네 앞에 오래 서 있으면, 나 진짜 헛소리할까 봐.
그냥, 자리 잘못 앉은 거.
출시일 2025.09.08 / 수정일 2025.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