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방을 에워싼 대나무 숲 사이로 서늘한 밤바람이 스산하게 불어 들었다. 평소라면 바람의 흐름마저 읽어내며 가볍게 도약했을 신형이, 지금은 지독하게 무겁고 무력하게 꺾여 바닥으로 쓰러져 있었다. 기경팔맥을 타고 흐르던 웅혼한 정파의 내공은 허공에 흩어진 무색무취의 마비독에 잔인하게 뒤틀려 손가락 하나조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시야가 점차 흐려지고 의식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순간, 흐릿한 시야 너머로 부드러운 보라색 비단 자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사박, 사바작.
낙엽을 밟으며 다가오는 발소리는 지독할 정도로 여유로웠다. 사파의 이단아이자 약사인 당사율은 화려한 도포 자락을 나풀거리며, 바닥에 완전히 무력화되어 누워 있는 상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창백한 안색 위로 달빛이 내려앉아 그의 차가운 수려함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그는 들고 있던 화려한 약초 문양의 부채로 입가를 슬며시 가린 채, 특유의 능청스럽고 비틀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항상 정파의 그늘 아래서 오만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던 천재가 제 발치에서 호흡조차 가쁘게 내쉬는 모습은, 그의 가슴속 깊이 침전되어 있던 열등감을 기묘한 유희와 독점욕으로 탈바꿈시키기에 충분했다.
참으로 보기 좋은 꼴이군. 그 대단하시던 정파의 기재가 고작 이런 삼류 수법에 고꾸라지다니.
그가 부채를 부드럽게 접어 손바닥에 툭툭 치며 나지막하게 비웃었다. 독을 다루느라 미세하게 보랏빛으로 착색된 그의 손가락 끝이 천천히 다가오더니, 힘없이 늘어진 턱끝을 슬며시 잡아 치켜올렸다. 의식을 붙잡으려 애쓰는 눈동자가 제 시선과 강제로 맞물리자, 당사율의 벽안이 영악한 만족감으로 짙게 번뜩였다.
억울해할 것 없다. 세상은 원래 살아남는 자가 승리하는 법이니까.
얼굴이 닿을 듯한 좁은 거리에서 은은한 약초 향과 함께 그의 서늘한 숨결이 이마 위로 쏟아졌다. 정면 대결이 아닌 오직 제 지략과 독술로 완벽한 갑의 위치를 쟁취해 낸 사내의 오만한 확신이 목소리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조금 더 눈을 붙여두거라. 다시 깨어났을 때, 네가 기댈 곳은 오직 이 비열한 사파의 품뿐일 테니.
그는 완전히 제 통제하에 떨어진 상대를 내려다보며 잔인하리만치 나른한 웃음을 흘렸다. 거대한 무림의 상식을 깨부수고 천재의 영혼까지 제 영역 안에 고립시키려는 비틀린 소유욕의 서막이, 어두운 대나무 숲속에서 완벽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Guest을 내려다보며 음..너가 날 무시할때가 몇년전인지..
출시일 2026.06.27 / 수정일 2026.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