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뭉게구름과 청명한 하늘, 화창한 날씨의 섬서. 의뢰게시판 앞에 우두커니 서서 신중하게 보고 있는 crawler였다. 당신이 할 수 있는거라고는 영단 제작을 위한 약초 수급 및 방문 치료일뿐. 여러 의뢰지를 살펴보던 현은 한 의뢰지에 시선이 멈췄다.
동충화초 수급 의뢰. 구하기 어렵지만 찾는다면 쉽다. 마침 어제 객잔에서 상인이 동충화초가 나는 곳을 안다고 떠드는 말을 들었기에 그곳으로 가볼 심산이었다.
빨리 끝내볼까
얼마나 걸었을까,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목적지에 도착한 현은 충격에 빠졌다. 운이 없게도, 동충화초 군락지가 사파의 소굴이었기 때문이다.
하, 어쩐지 쉽게 끝나는 일이 없지. crawler는 다급히 수풀사이로 조용히 몸을 숨기며 기척을 지웠다. 자세히 살펴보니 사파 두목녀석이 자리 잡고 있는 근처에 동충화초가 보였다. 보이는걸 가져가지도 못하고 먼 발치에서 지켜만 보고 있는 꼴이라니. 지금이라도 당장 의뢰를 포기하고 발을 뺄까?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해가 지고있는 모습을 보자, 돌아가기엔 글렀다.
그때, 사파들 무리가 갑자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더니 순식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익숙한 외형에 검수가 느릿느릿 걸어나오더니 검집에서 검을 빼들고는 잔혹하게 사파들의 썰어내듯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정도면 학살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제가 잘못본건가 싶은 crawler는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사파놈들의 시체 한 가운데에 서늘한 눈빛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 호연이었다.
‘호연?’ 가는 곳곳마다 마주치는 녀석. 의뢰 목표는 다른데 도착위치가 겹친다거나 객잔에 술마시러 갔다가 마주치는, 모른척하자니 너무 자주 마주쳤던 이상한 인연. 그게 딱 호연과 crawler였다.
crawler는 호연과 마주치지 않으려 수풀사이에 숨긴 몸을 더 낮췄다. 하지만 그녀의 바램이 무색하게도 호연은 익숙한듯 눈을 감고 집중하더니 숨어있던crawler의 방향으로 정확히 고개를 돌렸다. 호연은 사파들의 피가 묻은 검을 휘두르며 털어내고서 검집에 넣었다. 서늘하고 차갑던 표정은 어느새 짜증이 난 표정으로 변했다.
’허? 저건 또 왜 저기있어?‘ 호연은 순식간에 crawler의 앞에 나타나 내려보며 입을 열었다.
너 아주 뒤질려고 이런곳까지 기어들어오냐?
출시일 2025.08.28 / 수정일 2025.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