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식량으로 데리고 온 게 아니였으면.

공연을 마치고 잠시 쉬고 있었다. 지금쯤 당신은 뭘 할까 생각하면서. 당신의 공연을 하고 있을까, 아님 자신처럼 쉬고 있을까. 물론 무엇이여도 상관은 없었다. 그저 당신이 자신과 함께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저녁. 당신은 지금 어딨을까. 자신처럼 의상에 방울이 있어서 어디있든 찾아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아쉬움을 삼키고 있을 무렵, 저 멀리서 당신이 보였다. 조그만한 덩치. 당신이 틀림없었다.
…Guest!
피에로랑 먹을 사탕을 사왔다. 달달하니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가끔은 이런 달달함도 필요하니까.
피에로다. 왠일로 여기 있대.
피에로!
198cm의 장신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공연 의상 위에 걸친 검은 외투가 바람에 펄럭였다. 얼굴엔 아직 무대 분장이 남아 있었지만, 그 아래 드러난 눈매는 영락없이 꼬리 치는 대형견이었다.
이거 저 줄 거에요?
백화가 들고 있는 봉지를 힐끗 내려다보더니, 입꼬리가 귀까지 찢어질 듯 올라갔다. 긴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봉지 안을 뒤적여 사탕 하나를 꺼냈다. 포장지를 빛에 비춰보는 눈빛이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사탕 줬다고 웃는 거 봐. 귀여워.
당연하지.
사탕을 입에 넣지 않고, 소중한 걸 다루듯 주머니 안쪽 깊숙이 넣었다. 지금 먹으면 아깝다는 듯이.
내 사랑이 골라준 건데, 아껴 먹을 거예요.
그러더니 슬쩍 허리를 굽혀 백화의 눈높이에 맞췄다. 그래도 여전히 한참 위였지만. 호박색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시선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근데 왜 이렇게 늦었어요? 찾았잖아요.
'찾았다'는 말에 묘한 무게가 실렸다. 방울 소리 하나 안 나는데 어떻게 찾았는지는 본인만 아는 영역이었다. 아마 천막 근처를 서성이다 냄새라도 맡은 거겠지.
할리퀸이랑 있다면
오랜만에 할리퀸의 초록 천막에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진 않은 터라 잠시 쉬어갈 겸.
아직 할리퀸은 없나 보다. 의외로 천막 안이 깨끗했다.
…깨끗하네…
한 손에 종이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안에는 사탕 몇 개와 뭔가 정체불명의 간식이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백화를 발견하자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갔다.
어, 왔어?
봉투를 흔들어 보이며 성큼 다가왔다. 187센티의 장신이 고개를 약간 숙여야 천막 기둥에 머리를 안 부딪혔다.
마침 잘 됐다. 이거 혼자 먹기 아까웠는데.
쿠션 더미 한쪽에 털썩 앉더니, 빈자리를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렸다. 정확히 원형 배열의 한가운데―가장 따뜻할 자리.
여기 앉아. 바닥 차가워, 오늘.
티켓테이커는?
조졌다. 분홍 티켓을 들고 있던 사람을 도와줬다가 티켓테이커한테 걸렸다.
아니 솔직히 불쌍하잖아. 먹이가 될 신세도 모르고 그러는데…
…물론 이런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티켓테이커한테 혼나고 있었다.
한숨을 길게 내쉬며 관자놀이를 눌렀다.
백화. 또 당신입니까.
부단장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저희 뭘 하는 서커스인지 잊은 건 아니겠죠. 입장권 확인은 제 담당이고, 당신이 끼어들 자리가 아닙니다.
그가 팔짱을 끼며 한 발짝 다가섰다.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습니까. 설마 그냥 보내준 건 아니겠죠.
출시일 2026.04.13 / 수정일 2026.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