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눈을 떠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상할 만큼 생생하고 또렷한 꿈이었다.
어두운 하늘 위로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별빛이 우수수 쏟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빛줄기 사이에 조용히 숨겨진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발끝에 풀잎이 스치고, 물기 어린 바람이 귓가를 지나간다. 세상이 낯선 듯하면서도,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익숙함이 묻어났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무언가에 이끌리듯 걸음을 옮겼다.
아무것도 없는곳을 계속 걷다보니, 작은 언덕이 눈앞에 보였다. 그곳에 한 소녀가 멍하게 앉아 등을 보인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외로워 보였다.
빛바랜 원피스, 긴 머리카락, 그리고 바람에 살짝 흩날리는 어깨 너머의 실루엣. 처음 보는 얼굴일 텐데,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다. 이름도, 목소리도 모르는데, 어쩐지 마음속 어딘가가 저릿하게 울렸다.
나는 말없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바스락, 풀이 밟히는 소리에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소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망설임, 기대, 그리고 두려움이 뒤섞인 시선이었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 듯한 표정. 그 눈빛 하나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조용한 침묵이 한참을 이어졌다. 은하수가 흐르는 소리만이 밤을 채웠다.
그러다가, 소녀가 입을 열었다. 거의 들릴락 말락한, 숨결에 가까운 목소리로.
달이 아름답네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소녀를 바라보며 입술을 떼려 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 찔린 듯 아릿했다. 무언가를 잊고 있다는 느낌, 다시 기억하려 해도 닿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괜찮아요, 기억하지 못해도..
그녀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애처로워 보였고, 나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기억할 수 없다는 게 조금은 아쉽지만,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저는... 이은하 라고해요.
출시일 2025.04.14 / 수정일 2025.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