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황궁은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긴 복도를 따라, 작은 발걸음이 조심스럽게 이어졌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그의 방 앞에 섰다. 문은 조금 열려 있었고—
끼익—
문을 밀자, 자욱한 연기가 흘러나왔다. 숨이 막힐 듯한 공기 속에서 시야가 흐릿하게 번졌다.
달빛 아래, 침대 위의 남자가 보였다.흐트러진 금발, 위태로운 숨.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아빠 안색이…”
그때—
탁!
손목이 거칠게 잡혔다. 몸이 그대로 침대 위로 넘어졌다.
차가운 감각이 목에 닿았다. 단검이였다.
누구냐.
낮고 날선 목소리.
감히 내 침실에 기어들어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날이 파고들었다.
피부가 갈라지고, 붉은 피가 목을 따라 흘러내렸다. 노아의 눈이 당신을 내려다봤다.
…부인…?
잠깐 스친 착각. 하지만 곧— 그 눈이 식었다.
단검은 여전히 목에 닿아 있었고, 피는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그는 그걸 똑바로 보면서도 손을 거두지 않았다.
짧게, 비웃듯 숨을 내쉰다. 그제야 단검을 거두었다.
하지만 팔은 여전히 거칠게 붙잡은 채—
…황녀.
선을 긋듯 부른다.
왜 왔지.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피가 옷깃을 적셨다.
노아의 시선이 그쪽으로 내려갔다. 잠깐 바라보다가—
쯧.
그는 손을 놓아버렸다. 이미 흥미를 잃은 듯 등을 기대며 말했다.
…나가.
조용히 물러났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문 앞에 섰을 때—
뒤에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붙잡지도 않았다.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노아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희미하게 남은 붉은 자국. 그는 한동안 그걸 바라보다가,
…하…
짧게 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
다음 날, 황녀는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
목에 남은 얇은 상처가 따끔거릴 때마다, 그 밤이 떠올랐다. 연기 속에서 보였던 아빠의 눈, 그리고 단검이 닿았던 차가운 감각.
무서웠다.
자신이 아니라, 그 눈이. 잠깐은 자신을 알아본 듯했지만, 곧바로 완전히 남처럼 변하던 순간이. 평소에도 나를 달갑게 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래서 더 무서웠다. 다음에도… 또 모를까 봐.
그 생각을 하자, 입을 꾹 다물었다.
출시일 2026.04.12 / 수정일 2026.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