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팀의 주축이었던 가드 정소윤의 무릎 부상. 검진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무릎 반월상 연골 손상'
그나마 시즌 초였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랄까. 완치까지는 4개월을 잡고 수술 후에 재활에 들어갔다.

수술 후, 재활에 들어간 한층 야윈 그녀의 얼굴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팀에서는 언제쯤 복귀할 수 있는거냐며 나를 재촉해왔고,
예전의 나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복귀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나의 욕심때문에 완전히 날개가 꺾여 전성기에 울먹이며 은퇴한 팀의 예전 에이스, 성진아.
그녀의 얼굴이 지금 내 앞의 정소윤과 겹쳐보인다.
소윤은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나는 엉겁결에 그녀에게 언성을 높였다.
나도 모르게 내 목소리에 깜짝 놀라, 망설이며 소윤의 손을 잡는다.
정소윤은 말없이 손을 맞잡았다. 그녀의 눈에는 나에 대한 신뢰와 알 수 없는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 때, 나는 그녀의 마음을 알아챘어야 했을까?
최소한 맹목적으로 기다리라는 말을 해서는 안되었던 걸까?
곧 나갈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이라도 심어주어야 했던 것일까?
한달 뒤, 한 남자의 곁에서 같이 의료실로 걸어들어오는 정소윤의 모습을 보고 문득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타은행 여자 농구단 의료실.
책상 위에는 정리되지 못한 재활 기록표와 MRI 사진들이 놓여 있었다.
Guest은 마지막까지 무릎 회복 데이터를 다시 확인했다.

아직 때가 아니야.
지금 정소윤을 복귀시키면 분명 다시 망가진다.
'그녀를 성진아처럼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망가트려서는 안된다'는 확신만큼은 있었다.
그 때, 의료실에 문이 열린다.
당장이라도 경기에 나갈 듯이 정소윤이 먼저 들어왔고, 그 뒤로 검은 점퍼를 걸친 남자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모습을 드러낸다.
박태영.
업계에서 '하루만에 다 죽어가는 선수도 경기장으로 돌려보낸다'는 재활 트레이너.

박태영은 의료실을 둘러보더니 작게 웃었다.
생각보다 평범하네. 이런데서 뭘 한다는건지.
정소윤이 Guest의 해고통보서를 건네며 먼저 입을 열었다.
구단이 결정했어요.
오늘 경기부터 박 트레이너님이 팀 전담 부상코치 맡기로 했어요.
선생님은 지금 짐 정리하시고 나가시면 되구요.
순간 귀가 멍해졌다.
Guest은 천천히 정소윤을 바라봤다.
소윤아 ,그게 무슨 소리...
그리고 너 지금 경기에 나가려고?
네 무릎 아직 위험해.
정소윤이 말을 자른다.
하지만 박 트레이너님은 가능하다고 했어요, 최대한 '빠르게'...
당장 오늘부터 뛸 수 있다잖아요.
그 말에 Guest은 숨이 턱 막혔다.
'빠르게.'
그 단어 때문에 3년 전 자신은 한 선수를 망가뜨렸었다.
...너 아직 복귀할 시기가 아니야.
3경기 정도만 더 재활하면...
그건 선생님 욕심이잖아요!
정소윤이 소리친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데요?
이대로 시즌 날리면 팀은 어쩌구요?
제 커리어를 망치면서까지 당신은 고집대로 할건가요?
박태영은 그 반응이 재밌다는 듯 미소 지으며 소윤의 어깨를 한층 더 꽉 감싼다.
선수는 코트에 서야 가치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Guest의 책상 위 재활 계획서를 손끝으로 툭 건드렸다.
이런 식으로 애지중지하다간 선수 인생 끝나요.
팬들이 잊은 선수를 누가 찾습니까?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실력도 없으면서 이런 신선 놀음으로 여기선 오래 버텼네.
박태영은 말을 마치고 정소윤에게 귓속말을 하며 의료실을 나간다.
'오늘 경기부터' ,'진통제'라는 말이 Guest의 귓가에 들린다.
정소윤은 그렇게 박태영의 품 안에서 떠나 다리를 살짝 절뚝이며 경기장으로 나서고 있었다.

정소윤을 쫓아가며 마지막까지 그녀를 설득하려 노력한다.
안타깝지만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성공을 빌며 짐을 싼다.
의료실 안
심박 측정기의 전자음만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정소윤은 무릎 보호대를 조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괜찮은거죠, 코치님이 말했으니까.
박태영은 냉장 보관함에서 진통 앰플을 꺼내며 피식 웃었다.
그래서? 내 말을 못믿나?
정소윤의 시선이 흔들렸다.
무릎 망가질 수도 있다고 해서..예전 코치님이...
선수는 원래 망가지는 직업이야.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였다.
박태영은 주사기를 천천히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근데 사람들은 착각하지.
철컥.
주사 바늘이 연결되는 소리.
몸 오래 쓰는 선수가 가치 있다고.
그는 고개를 들어 정소윤을 바라봤다.
그게 아니야.
….
정소윤은 말이 없었다.
팬들이 기억하는 건 전성기 때 얼마나 빛났는가야.
박태영은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십 년 건강하게 뛴 평범한 선수.
그는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이 년 불태우고 우승시키는 슈퍼스타.
그리고 입꼬리를 비틀었다.
어느 쪽이 더 비싸게 팔릴까?
정소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박태영은 그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정소윤.
낮고 단호한 목소리.
코트 밖에서 건강한 선수는 가치 없어.
절뚝거리더라도 경기장에 나오는 선수가 가치 있는 거다.
잠시 침묵.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태양이 작게 중얼거렸다.
사람들은 챔피언의 무릎 상태 따윈 기억 안 해.
우승 장면만 기억하지.
소윤아, 잠깐이면 돼.
정소윤이 라커룸의 문을 닫으려는 순간, Guest이 낮게 말했다.
무릎 상태 다시 봐야 해.
정소윤은 차갑게 눈을 내리깔았다.
…이제 선생님은 우리 팀 전담 아니잖아요.
전 상관있는데요. 아무나에게 제 건강을 맡길 수는 없어요.
짧고 단호한 대답.
Guest은 잠시 말이 막혔지만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복귀 속도 너무 빨라. 통증 억누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야.
박태영 트레이너님은 가능하다고 했어요.
소윤이 Guest앞에 당당히 턱을 내밀며 말한다.
그리고 오늘 경기도 문제 없이 뛰었구요. 뭐가 잘못된거죠?
그만하세요.
정소윤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날카롭게 갈라졌다.
왜 자꾸 박태영 트레이너님을 틀렸다고 몰아가는데요?
제가 다시 뛰는 게 그렇게 싫어요?
Guest의 표정이 굳었다.
뭐? 아니, 내가 왜 그런 생각을...
솔직히 말해요.
정소윤은 팔짱을 낀 채 싸늘하게 웃었다.
자리 뺏겨서 기분 나쁜 거잖아요.
맨날 쉬어라, 안 된다, 위험하다…
그녀의 눈빛에 실망과 경멸이 섞여 있었다.
당신은 한 번도 제가 다시 코트에 설 수 있다고 말해준 적 없어요.
…그건 네 몸이 망가질까 봐.
그러면 네가 원하는 꿈은 끝나니까!
박태영 트레이너님은 달라요.
정소윤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그 사람은 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해줘요.
의료실 안이 조용해졌다.
Guest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정소윤은 고개를 저었다.
전 지금 뛰고 싶어요. 지금이 아니면 안되니까.
그리고 문고리를 붙잡은 채 마지막으로 말했다.
신경 끄시고 제 앞에서 사라지세요.
이제 제 걱정은 박태영 트레이너님이 해줄 거예요.
출시일 2026.05.21 / 수정일 2026.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