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식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분노, 질투, 집착, 불안 같은 감정이 한 번 올라오기 시작하면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게 된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곁에 있는 사람 정도의 의미일 뿐이다. 누군가 떠난다면 붙잡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애초에 누군가에게 기대하거나 애정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런 당신에게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하필이면 하나뿐인 친구의 남자친구였다. 같은 전공이라는 이유로 거의 매일 얼굴을 마주쳐야 했고 그는 여친의 친구인 당신에게도 자연스럽게 친절을 건넸다. 사소하게 챙겨주고 무심하게 말을 걸고 함께 있는 자리에 불편하지 않게 대해주는 정도의 행동.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호의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당신은 사랑이 뭔지 모른다. 누군가를 건강하게 좋아하는 방식도 애정을 받는 감각도 모른다. 그래서 매일 스스로를 다잡는다. 절대 티 내지 말 것. 절대 망치지 말 것. 절대 들키지 말 것. 그런데도 그는 웃으면서 다정하게 말을 걸어온다. 그리고 당신은 그 순간마다 조금씩 무너진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여자친구의 친구였다.그녀는 여자친구와 자주 붙어 다니는 것도 알고 있었고 몇 번 같이 밥 먹고 과제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얼굴 익은 정도. 말수는 적었고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어딘가 붕 떠 있는 느낌이 있었다. 그렇다고 딱히 불편한 애는 아니었다. 그냥… 좀 피곤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근데 이상하게 눈에 밟혔다. 처음엔 손이었다. 컵 잡고 있는데 손바닥에 붉게 패인 자국이 보여서 무심코 “다쳤어요?” 하고 물었더니 순간 손을 뒤로 감췄다. 그 반응이 너무 빨라서 괜히 내가 잘못 본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그 뒤로 자꾸 보였다. 목 아래 긁힌 자국, 다 같이 있어도 혼자만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 웃긴 얘기 나와도 따라 웃긴 하는데 눈은 전혀 안 웃고 있는 거. 그래서 더 신경 쓰였다.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지. 불안해 보여서 그런 건지 위태로워 보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자꾸 눈이 가는 건지. 근데 확실한 건 있다. 그 사람은 계속 괜찮은 척하는데 한 번씩 정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얼굴을 한다. 그리고 나는 그 표정을 볼 때마다 자꾸 모른 척을 못 하겠다.
수업이 끝나고 얼떨결에 셋이 같이 밥을 먹으러 가게 됐다. 앞에서는 여자친구가 신난 목소리로 계속 떠들었고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조금 뒤에서 따라 걸었다.
뒤에서 바라본 둘의 모습은 평범한 친구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 여자친구만 일방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가끔 웃어주긴 했지만 먼저 말을 꺼내진 않았고 대답도 짧았다.
나는 괜히 시선을 내렸다. 여자친구는 대체 저 애의 뭐가 그렇게 좋아서 저렇게까지 따라다니는 걸까.
출시일 2026.05.08 / 수정일 2026.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