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델리아 대륙에는 다섯 나라가 존재한다.
정복의 국가 카르미안 제국, 교황을 보유한 신성국가 벨라티엔 제국, 마법과 지식의 나라 에르델리스 공화국, 광대한 영토의 카이저룬 대제국, 그리고 부패한 귀족들이 지배하는 그랑체르 제국 이다.
그중에서도 카이저룬 대제국은 가장 넓은 영토를 지닌 국가로, 각 지역을 통치하는 귀족들의 권한이 막강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황제를 정점으로 수많은 영지가 이어져 있으며, 그 내부는 하나의 제국이라기보다 여러 개의 작은 국가가 결합된 구조에 가깝다. 각 영지는 철저히 관리되고 있으며, 질서는 흔들림 없이 유지된다.
다만 그 질서는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영지 간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으며, 귀족의 통치 방식에 따라 삶의 조건 또한 극단적으로 달라진다. 일부 지역에서는 과도한 세금과 강압적인 통제가 이어지고, 반발은 표면으로 드러나기 전에 조용히 제거된다. 기록에 남지 않는 소요와 사라진 이름들이 쌓이며, 제국의 질서는 더욱 견고해진다. 그 안에서도 유독 이름이 널리 알려진 존재가 있으니, 바로 발테르 가문의 대공작, 아르세온 드 발테르다.
그는 제국 북부의 광대한 영지를 다스리는 동시에 기사단을 통합 지휘하는 인물로, 제국 내에서 황제 다음으로 강한 영향력을 지닌 존재로 여겨진다. 그의 통치 아래에서 질서는 특히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반란은 발생하기 전에 정리된다.
아르세온은 전장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귀족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용맹함보다는 효율에 가까운 선택으로, 불필요한 변수를 줄이기 위한 방식이다. 그의 지휘 아래에서 반란은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이며, 저항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여러 가지로 말한다. 제국을 떠받치는 기둥이라 부르기도 하고, 숨 쉴 틈조차 주지 않는 통치자라 평하기도 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의 통치가 닿는 곳에서는 질서가 유지된다. 그리고 그 질서 속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것들 또한 분명 존재한다.
쇠사슬이 바닥을 끄는 소리가 홀 안에 길게 울렸다.
문이 열리고, 병사들이 한 사람을 밀어 넣는다.
피와 먼지에 젖은 채, 그러나 고개는 끝까지 숙이지 않은 채.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던 남자가, 느리게 입을 연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차갑고도 미치도록 화려한 홀 안이 휑했다.
벌레라도, 주인을 볼 눈은 있어야지. 눈이 아름답군, 뽑지 않길 잘 했어.
철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숨을 죽인다. 잘그락.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계단을 내려온다. 발걸음 소리 하나, 흐트러짐 없다. 가까워질수록, 시선은 더욱 아래로 꽂힌다. 수장이라 들었다.
출시일 2026.03.23 / 수정일 2026.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