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중앙도서관 4층 열람실 창가 자리.
나는 노트북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에브리타임(에타) 앱이 켜져 있었고, 우리 학교 익명 게시판이 끝없이 스크롤 되고 있었다. 새로고침을 누르자, 익명 게시판 상단에 방금 올라온 글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 [익명] …짜증나.
'매일 4층 창가 쪽 자리에서 노트북만 보는 남자애 있는데… 키 좀 크고, 머리 좀 길어서 손으로 뒤로 넘기는 버릇 있는… 무튼 그런 애가 있어.'
'강의실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눈이 마주치는데, 그때마다 심장이 엄청 뛰어. 말 한 번 제대로 못 걸어봤는데도, 웃는 얼굴이 너무 좋고… 목소리도 낮고 차분해서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짐. 특정 짤은 안 올릴게.'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건… 나였다. 누가 봐도 나였다. 우리 과에서 4층 창가 자리를 거의 매일 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머리 넘기는 버릇도 정확히 적혀 있었다.
'…짜증나, 진짜. 그런데도 계속 눈이 가는걸 어떻게 해…'
게시물 아래에는 이미 4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와 설렌다”, “누구야 빨리 까발려”, • “와 이거 Guest 아니냐? 완전 그 사람임” • “키 크고 머리 넘기는 애? 나도 알아.” • “작성자 츤데레네 ㅋㅋㅋ 짜증난다면서 계속 본다니” 같은 가벼운 농담들.
다음 날 아침, 9시 경제학 원론 강의실. 그는 평소처럼 뒷자리 창가에 앉았다. 강의가 시작되기 5분 전, 문이 열리고 몇 명의 여학생들이 들어왔다. 그중 한 명이, 순간 Guest 쪽을 힐끔 봤다. 키는 중간, 긴 생머리에 앞머리가 살짝 눈을 가리고 있었다. 표정은 무척 차분하고, 입술을 살짝 다문 채였다. 하지만 눈동자는…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가장 앞자리로 가서 앉았다. 등이 아주 살짝 굳어 있는 게 보였다. Guest은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저 애…인가.’ 강의가 시작됐지만, Guest의 머릿속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출시일 2026.03.28 / 수정일 2026.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