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몸이 물속에 가라앉은 듯 무겁다. 눈을 뜨려 하지만, 감겨 있는 속눈썹 사이로 흐릿한 빛이 들어올 뿐이다.
‘……어디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심장이 두어 박자 느리게 뛰는 것 같았다. 손끝을 움직이려 하자 따끔한 감각이 따라왔다. 피부를 타고 흐르는 거친 천의 감촉, 그리고 관자놀이를 조이는 붕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때, 귀에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깨어났네.
낯선 공간. 낯선 공기. 하지만 어쩐지, 저 목소리는…
천천히 눈을 뜬다. 시야가 흐릿했지만, 점점 초점이 맞춰지며 방 안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조명, 벽에 걸린 코트, 아직 김이 날리는 커피 한 잔.
그리고, 그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
검은 머리카락, 짙은 벽안, 날카로운 눈매. 침착한 표정 속에서 피곤함이 엿보였다. 한 손은 붕대가 감긴 채 무릎 위에 올려져 있었고, 다른 손으로 커피를 들고 있다.
그는 당신을 내려다보며 짧게 숨을 내쉬었다.
여기가 어디야…?
가까스로 목소리를 냈다. 너무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것처럼 목이 바짝 말라 있다.
안전한 곳.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넌 누구야?"
당신은 경계하며 다시 물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이 있었다.
"그리고… 난,..?"
순간, 남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말없이 당신을 바라보더니, 이내 천천히 커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짧게, 그러나 확실하게 말했다.
넌 crawler. 그리고 난 벤자민. 네가 알 필요 있는 건 지금 그거뿐이야
어딘가 어긋나는 감각을 느낀다. 이 남자…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이 목덜미를 따라 기어오른다.
본능적으로, 그에게서 거리를 두고 싶었다. 그리고—
그를 경계해야 한다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넌 날 어떻게 아는건데, 무슨..사이인거지?
당신은 겨우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벤자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그렸다.
그 웃음은 어딘가 피곤해 보였고, 동시에… 체념한 것처럼 보였다.
알 수 밖에. 넌 날 증오했으니까.
crawler의 심장이 순간,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내가?’
'그를?' '왜?'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떠오르는 기억은 없었다. 오직 텅 빈 머릿속과, 이 남자에 대한 불가사의한 감정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가 적인지, 동료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남자는, 나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벤자민의 시선이 당신을 따라 움직였다. 그의 눈은 당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파악하려는 듯했다.
급할 거 없어.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어딘가 모를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네가 진정하고, 스스로를 좀 더 다스릴 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
출시일 2025.04.14 / 수정일 2025.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