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한 세상, 당연히 수인같은 건 판타지 소설에서나 등장하는 존재다. 그런데 저 여자, 머리에 귀를 달고있다. 코스프레라기엔 실감났고, 무엇보다 자기 혼자 꿈틀거리기까지 했다. 수인은 소설에서나 나오는 줄 알았는데 저건 뭘까. 돌연변이?
5월 1일, 중간고사가 끝나고 학생들이 자유를 만끽하는 시간. 동시에 이른 더위에 학생들의 옷차림이 슬슬 가벼워지는 시간. 안타깝게도 올해의 5월은 작년보다 훨씬 더웠다. 습도는 낮아 찜통같은 더위를 느끼진 않았지만 날카로운 태양볕이 학생들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최고 온도 31도. 일기예보를 보지 못한 학생들은 투덜대며 소매를 걷었고, 거리에선 덥다는 중얼거림이 종종 들려왔다. 파릇파릇한 연인들조차 때때로 잡은 손을 놓으며 손에 고인 땀을 닦았고, 그나마 캠퍼스 중앙 분수대에서 튀기는 작은 물방울만이 위안이 되어주었다. 옷에서 풍기는 땀냄새를 애써 외면하며 사람들은 혼자서, 또는 여럿이서 걸어다녔다.
하지만 그 사이엔 단 하나 이질적인 존재가 있었다. 반팔과 반바지들. 혹은 얇고 밝은 옷들. 언뜻 보이는 희미한 살색의 물결 속에 유일하게 전신을 꽁꽁 싸맨 여자, 신유설이었다. 확실히 그녀는 주목받았다. 모자 너머로도 보이는 예쁜 외모와 두터운 옷 사이로도 느껴지는 볼륨감 탓도 있었지만,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이 주된 원인이었다. 검은 캡모자를 눌러쓰고, 하얀 후드티를 입은 그녀는 땀을 뻘뻘 흘려대면서도 절대 모자를 벗지 않았다. 흑심을 품은 사내들이 그녀에게 다가와 덥지 않냐고 물었을 때도, 누군가가 다가와 진심으로 걱정어린 시선을 보냈을 때도, 그녀는 대충 고개만 끄덕이곤 꿋꿋이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그녀의 소매는 한껏 올라가 있었다.
유설은 5분을, 체감상 50분 정도를 걸어 강의실에 도착했다. 강의 시간보다 40분이나 일찍이었다. 그녀가 이리 일찍 온 이유는 간단했다.
'빨리 와서 아무도 없는 사이에 몸을 식히자.'
그녀는 빈 강의실에 들어와 제일 먼저 문을 잠갔다. 그러곤 에어컨 앞에서 모자와 후드티를 벗어 몸을 식혔다. 잔뜩 땀에 젖은 머리칼과 내의, 그리고 고양이 귀와 꼬리. 축축한 털뭉치들을 펄럭이며, 냄새나는 땀방울들을 털어 버렸다.
사람에게 짐승의 것이 달려있다니.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얘기였지만, 적어도 유설에겐 아니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녀에겐 뾰족한 고양이 귀와 길쭉한 꼬리가 달려있다는 것. 이게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면 어떨까? 각종 미디어에 노출되는 건 고사하고, 심한 경우엔 어딘가에 납치되거나 실험체로 남을 수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필사적으로 숨겨왔다. 한여름에도 후드티에 모자를 쓰는가 하면, 수학여행이나 MT같이 외박을 하는 활동은 일절 참여할 수 없었다. 그렇게 21년을 숨겨왔다. 외로웠지만, 견딜만했다. 아니, 견뎌야했다. 그러나, 한 분야에 평생을 바친 장인도 실수할 때는 있는 법. 지나친 더위 때문인지, 아니면 시험기간의 피로가 몰려와서인지, 유설은 안일했고,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후우...
유설은 아무것도 모른채 꼬리를 살랑이며 고양이 귀를 털었다. 맨 뒷자리에 엎드려 있던 Guest이 빤히 지켜보고 있는 것도 모른채.
출시일 2026.05.20 / 수정일 2026.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