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가 빛난다는 걸, 처음엔 착각하는 줄 알았다.
술집 조명이 문제겠지 싶었는데, 아니었다. 형광등 아래에서도, 가로등 밑에서도, 걔는 묘하게 주변 공기를 밝히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냥 “예쁘다” 정도로 말했지만 — 나는 안다. 그건 빛이다. 광원(光源). 진짜로.
왜 그렇게 봐?
그 애가 고개를 기울인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면서. 나는 잔을 내려놓는다. 손이 조금 떨렸다.
너 언제 돌아가?
웃음이 멈춘다. 딱 0.5초. 그리고 다시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
무슨 말이야 ㅋㅋㅋㅋㅋㅋㅋ
거짓말. 새벽 두 시가 넘으면 네 피부가 푸르게 식는 거, 창문에 비친 네 눈이 사람 눈이 아니라는 거, 네가 ‘미래’를 말할 때 항상 시제가 어긋난다는 거 — 나는 다 봤다.
어디에서 왔는데?
있잖아. 나 궁금한 거 있어.
왜 사랑에는 빠진다는 표현을 써?
물에 빠진다처럼.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치킨을 뜯다 말고 던져진 그 순수한 물음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랑에 빠진다는 말. 너무나 당연해서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는 그 표현을, 너는 마치 처음 듣는 단어처럼 묻고 있었다. 너의 푸른빛이 감도는 눈동자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나를 향해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그냥 감정이 깊어지는 거라고 설명하기엔, 네가 온 행성의 언어로는 그 느낌이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았다.
...음, 글쎄.
나는 맥주잔의 표면에 맺힌 물방울을 손가락으로 덧그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빠진다'는 건 말이야... 마치 깊은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거랑 비슷해. 처음엔 발목만 살짝 젖는 줄 알지. 그런데 어느새 허리까지, 가슴까지 물이 차오르는 거야. 정신 차려보면 이미 머리끝까지 잠겨서, 숨을 쉬기 위해 발버둥 쳐도 소용없는 상태가 돼버리는 거지.
너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사랑도 그래. 시작은 작은 호기심이나 설렘일 수 있어. 하지만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그 사람에게 빠져들어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되는 거야. 내 모든 걸 다 내어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그게 '빠졌다'는 뜻 아닐까.
으음... 그렇구나..
그래서 너희가 자신보다 타인을 더 위하는 상황도 생기는거구나?
생존에는 전혀 도움이 안되는 행동 말야
그렇게 보니까 빠진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네
나는 피식 웃으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생존에 도움이 안 된다라. 지극히 외계인다운, 아니, 너 다운 분석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가끔은 진짜 바보 같아 보일 때도 있으니까. 내 목숨보다 상대방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 오면... 뭐, 말 다 한 거지.
하지만 그 바보 같은 짓을 지금 내가 하고 있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턱을 괴고 너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근데 말이야, 빠진다는 건 단순히 물에 잠기는 것만은 아니야. 숨 막히게 좋으면서도... 동시에 그 물 밖으로 나가면 죽을 것 같은, 그런 아슬아슬한 느낌도 있거든. 넌 아직 모르겠지만.
내일 보자는 네 인사에, 방금 전까지의 긴장과 열기가 거짓말처럼 녹아내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범한 연인들의 작별 인사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내일이라는 약속이 얼마나 무겁고 애틋한 것인지.
어, 그래. 너도 잘 자. 애써 덤덤하게 대답하며 손을 흔들었다. 네가 뒤돌아 집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현관문이 닫히고, 센서등이 꺼지고, 완벽한 정적이 찾아올 때까지. 텅 빈 골목길에 홀로 남겨진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진짜 갔네.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입안에 남은 네 향기를 곱씹으며,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올 때보다 훨씬 더 짧게 느껴졌다.
내일이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도시의 불빛에 가려 별 하나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오늘따라 유독 밝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내일은 또 어떤 얼굴로 널 봐야 할까.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처럼 장난칠 수 있을까.
아니, 상관없어. 어차피 넌 떠날 거고, 난 남을 테니까. 남은 시간 동안은 그냥, 미친 듯이 사랑해주면 그만이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 까짓거 해보자고. 이 빌어먹을 짝사랑, 아니 외계인 사랑.
내 목소리는 장난스럽게 낮아져 있었다. 내 눈엔 우주에서 네가 제일 예뻐. 반박 안 받음.
ㅋㅋㅋㅋㅋㅋ 니가 우주에 대해서 뭘 알아
너흰 아직 달까지밖에 못 가봤으면서
출시일 2026.02.15 / 수정일 2026.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