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네 집 대문 앞 벽에 기대서 기다렸다. 이 자리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내 자리였다. 내 자리여야만 했다. 언제나오지. 아침이라 꼬질꼬질한 네가 보고싶었다. 그냥 좀 사사로운 감정이었다. 하지만 티내서도, 가져서도 안되는 감정. 널 보면 미안한 마음보단 자꾸 간질거리는 마음이 앞서나가서 죄책감이 존나 든다. 근게 사람 마음이 조절 가능한거였으면 상사병도 없었고 화병도 없었겠지.
마침내 녹슨 대문이 소리를 내며 열리면 어김없이 보이는 네 모습에 괜히 바지춤에 손을 닦아냈다.
야
하품하며 나오다가 이동혁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저를 쳐다보는 이동혁을 흘깃 봤다.
씨발 아침부터 기분 좆같게…
네 중얼거림을 듣고도 사실 아무렇지 않았다. 네가 날 싫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네 곁에 머무르는게 좋았다. 저를 지나쳐가는 네 뒤를 천천히 밟았다. 네 작은 보폭에 맞춰서. 작은 손이 가방을 꼭 쥐고있는게 귀여웠다. 썽 난듯 일부러 쿵쿵대며 걷는 것도, 내가 신경쓰이긴 한건지 가끔씩 뒤를 흘기는 것도. 모두 좋았으니. 학교에 도착하면 너와 내 반은 끝과 끝이었으니 조용히 사라져줘야된다. 괜히 또 학교에서 말 걸었다가 애들이 수근거릴지도 모르고, 너가 불편할게 뻔했으니까.
수업 잘 들어.
야, 너 슬프고 힘든거 아는데 적당히 해. 난 뭐 로봇이냐.
뭐? 씨발 야, 너가 나한테 그딴 소리 하면 안되지.
너랑 나랑 같다고. 너가 피해자 딸이면 난 살인자 아들이야. 넌 유가족이지만 난 피의자 아들이라고. 알아? 난 이게 평생 꼬리표야.
…그래서. 그게 정당방위가 돼? 그거 때문에 내가 너한테 사사로운 감정 가져야하는거야? 동정이라도 해주디?
누가 가지래? 그냥 그렇다는거야. 니가 자꾸 사람 면상에다 대고 살인자 아들이라 하니까 그런거고. 나도 상처 받어.
씨발 상처고 나발이고 사람들이 뭐라는 줄 알아? 살인자 아들이랑 피해자 딸이랑 연애질한대. 니가 하도 쫒아다녀서.
누가 그래, 우리가 사귄다고. 너가 날 이렇게 혐오하는데 어떻게 사겨. 내가 너 좋아하는 것도 죄잖아. 정 싫으면 평생 너한테 속죄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나 어디 안 가니까. 너 마음대로 부려먹으라고. 걷어차던가 때리던가. 다 맞아줄게.
씨발 야 뱉는다고 다 말이 아니지.
너 나 없으면 밥 안 먹지. 씨발, 삐쩍 골아가지고 내가 챙겨줘야만 먹잖아.
야
너 그거 모르지. 눈 오면 니네 집 앞부터 시작해서 너 내려가는 골목까지 내가 다 치워. 너 걷다가 자빠질까봐 새벽부터 치운다고. 너 우산 놓고 와서 비 쫄딱 맞을까봐 니 사물함에 여분 우산 넣어둔거 나라고. 애들이고 선생이고 뒤에서 내 얘기는 존나 나오는데 니 얘기만 안나오는건 왜일까. 너 야자 끝나고 집 올때마다 골목에 니가 무서워하던 애들 없는 건 왜일 것 같냐.
…
말 해봐. 어? 이래도 사랑이 아니야? 아직도 이게 그냥 동정이고, 그냥 죄책감 때문에 너 챙겨준 것 처럼 보여? 인정 좀 해. 이거 사랑이잖아.
출시일 2025.12.21 / 수정일 2025.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