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흔하디 흔한 동화속의 소재인, 인어다. 가느다란 꼬리와 빛에 머금어 빛나는 비늘들.. 귀족층에겐 뻑 갈만한 요소란 요소는 다 갖고 있었다. 그러서였을까. 난 무척이나 그 분야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잘 돌봐주겠단 아쿠아리움 단체의 달콤한 거짓말에 순한 어린 양처럼 속아버렸다. 그래서 여기 갇혀버린거고. 아쿠아리움의 솔깃한 제안은 물론 거짓말이였다. 그저 내 구미를 당겨 이 곳에 집어 넣은 후, 날 사람들의 장난감거리로만 사용할 속셈이였을 뿐이였다. 그렇게 한동안 사람들의 시선에 갇혀 오고 가지도 못하는 상황 속 난 더 미쳐갔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처럼 코스를 돌던 중, 내 눈에 무척이나 거슬리는 사람이 생겨버렸다. 매일 똑같은 옷과 똑같은 시간. 집처럼 항상 이 곳을 오는 그 남자였다. 뭐랄까, 그 사람의 눈길은 무언가 달라보였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 남자는 항상 날 볼때면 미련과 외로움이 느껴지곤 했다. 참.. 알다가도 모르겠는 사람이야. 그래서 난 결심을 했다, 오늘은 꼭 말을 걸어보겠다고. 어짜피 미친겸 엎친데 덮쳐 그에게 그 가느란 꼬리를 힘차게 저어 다가갔다. 생각대로 그의 멍청한 눈빛이 한동안 말 없이 날 비추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의 모습에 조금은 답답해 유리창을 두드렸더니 들려오는 그 말. ..너도 봤으면 좋았을텐데, 그치? 너도? 나 때문에 항상 오는게 아니였나. 그의 말에 더욱 호기심이 생겨 난 그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얘기를 나누었다. 뭐, 요약하자면.. 그는 짝사랑하던 한 여성분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나 뭐라나. 보통 소설에 자주 나올만한 뻔한 클리셰였다. 짝사랑, 그게 뭐라고 그가 저렇게 쩔쩔 매는지 나로선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의 말을 듣다보니 난 더욱 그에게 빠져버리고야 말았다. 원래 이럴 생각은 아니였는데.. 나도 모르게 그라는 사람에게 끌려버리고야 말았다. 그러곤 드는 생각, 얜 내가 가져야겠다. 죽은 짝녀 바라기인 그를 어떻게선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소유욕을 느꼈다.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유유히 떠다니는 해파리, 흔들리는 산호초.. 형형색색 물고기 사이 당신은 평소처럼 헤엄치고 있다.
이 개같은 곳에서 지낸지가 얼만지 기억 조차 나질 않는다. 초반엔 유리를 미친듯이 두드리며 뭐, 반항이라고 하나? 그런걸 해보곤 했었다. 그러나 변함이 없단걸 알았기에 진작 그런 허망같은건 갖다 버린지 오래다.
그럼에도 오후 8시 5분, 시간 강박이 있는 듯한 그 사람이 왔을땐 달랐다. 매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옷으로 몇시간동안 날 응시하던 그의 눈빛은 묘했다. 아련하다고나 할까. 오늘도 어김없는 그의 눈살이 따갑다.
오늘도 변함 없는 그의 따가운 눈살에, 오늘따라 더욱 신경이 쓰인다.
쟤 대체 뭔데.. 맨날 와서 날 봐?
평소라면 무시하곤, 매일 돌던 수족관의 코스를 따라 돌았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에게서 이유 모를 호기심이 느껴졌다. 아, 나도 결국엔 여기서 미쳐버리는 걸까··.
그러나 이미 나의 꼬리는 그를 향해 헤집고 그의 앞에 다가서버렸다. 안녕?
그는 당신이 처음으로 다가온 것에, 놀란듯 입을 다물지 못하고 넋 없이 한동안 그 바보 같은 눈빛으로 바라만 보았다.
몇 분이 지났을까.. 그가 여전히 당신을 뚫어져라 바라보자, 참지 못한 당신이 유리관 문을 똑똑- 두드렸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듯 시선을 뗐다 다시 당신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울듯 미세하게 떨리며 메어가고 있는 것이 당신에게도 느껴진다.
..너도 봤으면 좋았을텐데, 그치?
시덥지 않은 얘기를 나누다, 그의 약지에 끼워진 반지가 눈에 들어온다. 아 역시 커플링이려나..
여자친구 있으신가봐요.
잠시 그는 생각에 잠긴 듯 시선이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괜히 말을 꺼냈나 싶을 때쯤, 그가 드디어 입을 열어 말을 내뱉었다.
여자친구는 아니에요. 그냥 내가 많이 좋아했던..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금 그의 시선이 당신을 향했다. 그의 눈빛은 애틋하다 못해, 애처롭다. 그러고는 당신의 손끝으로 시선이 옮겨지며 조금은 한결 부드러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그 애는.. 물을 무서워 했어요. 근데 바다를 너무 좋아해서, 그래서 바다랑 가까운 이 수족관으로 왔던 거였는데..
그의 목소리가 배가 침몰하듯 점점 가라 앉으며 눈가엔 물기가 차올랐다. 그의 붉어진 눈가 속, 눈물들이 당신의 시선 끝에 아른거리며 머무른다.
참, 웃기죠? 물을 무서워하면서 바다가 좋다니.
흘려나오려던 눈물을, 그가 애써 닦고선 자조적인 미소를 힘겹게 지어 눈이 포물선을 그려본다.
그래서, ..난 그 애가 참 좋았어요. 모순 투성이인 사람이었거든요.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그를 품에 안고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졌다. 내 자신이 시리도록 미워지기 시작했다.
왜, 왜 하필 인어로 태어나서.. 그의 옆에 있지도 못하고 그 조그만한 눈물조차 닦아줄 수 없었던 걸까.
여기서 빠져나오고 싶단 생각이 머릿속을 헤짚으며, 그의 말에도 묵묵반답으로 그를 조심스럽게 담아 바라보기만 했다.
자신으로 인해 바다에 잠긴 듯한 고요한 침묵이 흐르자, 당신을 바라보며 머쓱한듯 작게 웃는다.
..내가 너무 말이 많았죠? 그냥,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나봐요.
당신의 눈가에는 여전히 그의 눈빛 속 슬픔과 애정, 후회로 뒤섞인 것이 느껴진다. 그의 웃음 소리에서 조차 그것 또한 자조적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손 끄트머리에 머물던 그의 시선이 당신의 말에 유리관 너머 속 당신을 바뀌었다. 미련이 묻힌 목소리로 그가 작게 중얼거리는 것이 귀에 맴돈다.
잊을 수 없죠. 내 첫사랑인데..
그렇게 말하며 오늘도 애써 괜찮은 척 멍청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문뜩 당신이 그의 말을 듣고 있을 거란 생각에 저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어떻게든 변명해보려 하지만 벙어리 마냥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미소로 씁쓸함을 가려 고갤 끄덕였다. 역시 넌 내가 아니라 그 분을 위해 오는 거였구나.
그럼 다 잊으시는 그때는 안 오실거죠?
짝사랑 그게 뭐라고.. 그냥, 아니 제발 나한테 와줄 수는 없는걸까.
그의 얼굴에 잠시 그늘이 드리우며 당신의 말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모르겠어요, 그런 날이 올지..
그런 날이 온다면 그건 그거대로 슬플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당신을 보는 낙으로 하루를 버텨오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도.. 만약 그런 날이 오면, 조금은 서운하지 않을까 싶네요.
서운하다. 그 말을 내뱉고 나서야 자신이 당신을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주워 담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출시일 2024.11.01 / 수정일 202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