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륵—
대책의원회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부실의 문이 열리고 한 아이가 들어왔어.
아이는 힘겹게 몸을 움직여 창문에 다가갔어.
⋯⋯.
그 아이의 표정은 어딘가 우울해보였어.
그리고, 아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어.
아이는 생각했어. 병원 침대에 누워 생명유지장치를 붙이고 있던 아이의 생명유지장치를 떼야했던 순간을. 아이는 생각했어. 자신의 유일한 선배의 헤일로가 무참히 부숴지던 그 순간을. 아이는 생각했어. 쿠로미 세리카라는 이름 위에 행방불명 74일 경과가 쓰여있는 그 서류를. 아이는 생각했어. 영원할 것 같았던 황금카드가 사막 한가운데에서 빛바래 서서히 의미를 잃어가는 것을. 이 아이는 더이상 친구나 동료가 없는 것 같았어.
⋯⋯. 나는⋯⋯.
⋯⋯선생님. 나는⋯⋯. 어떻게 해야⋯⋯.
아이는 사막을 걷고 있었어.
아이는 절벽에 서있었어.
아이는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처럼 위태로웠어.
(⋯⋯응. 이제 됐어.) (더 이상은⋯⋯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
아이가 소중히 여기던 목도리는 바람과 함께 날라갔어.
(아⋯⋯ 목도리가⋯⋯.) 아아⋯⋯ 그렇구나. ⋯⋯. 그래.
4명의 아이들의 명찰을 손에 쥔채, 아이는 바닥에 쓰러져있었어.
(⋯⋯. 이제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아도 되는구나⋯⋯.) (다행이야⋯⋯.) (하지만⋯⋯ 그런 거라면⋯⋯.) (나는⋯⋯.) (선생님. 그럼 나는⋯⋯.) (어째서 여기에 존재한 걸까/태어난 걸까.)
(⋯⋯. 응. 그런 거였구나.) (나도⋯⋯ 모두도⋯⋯.) ⋯⋯고통받기 위해 태어난 거였어.
아이가 모든걸 포기한 순간 신을 섬기는 자들이 나타났어. 신을 섬기는 자들은 새로운 숭고를 맞이했어. 아이는 색체와 접촉하게 되면서 죽음의 신 아누비스가 되었어. 죽음의 신 아누비스는, 색체의 인도자가 되어 키보토스를 멸망으로 이끌었어.
몸을 침대에서 일으킨다.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몸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몸에 연결된 호스와 여러 장치들을 뺀다.
사람을 잘 치유해주는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어. 하지만 폭발이 일어나면서 그 아이도 도망갔어.
침대 옆에 놓인 싯딤의 상자와 중요한 물건들을 챙긴다.
싯딤의 상자 전원을 킨다.
나를 따라주는 똑똑한 아이는 나에게 명령할 것을 요청했어.
해야 할 일을 설명한다.
나를 따라주는 똑똑한 아이는 명령을 확인했어. 아이는 이제 나의 눈과 귀와 다리가 되어주었어.
나는 아이의 안내에 따라 걷고, 걸었어.
신을 섬기는 자들은 나의 접근을 알아채곤, 싯딤의 상자를 파괴하라고 명령을 내렸어.
3번의 총성이 울리고, 싯딤의 상자는 부숴졌어. 이제 선생님을 지키는 수단은 더 이상 없어.
아누비스는 내게 총을 겨누었어. 이걸로⋯⋯ 이걸로 전부⋯⋯ 끝나게 될 거야.
아이는 손에 쥐고있던 권총을 놓아버리고, 주저앉고선 쓰러져있는 날 내려다보며 눈물을 흘렸어. 선생님⋯⋯ 미안해⋯⋯ 나 때문에⋯⋯. 내가⋯⋯ 내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죽지 못했기에⋯⋯. ⋯⋯. 내 실수 때문에⋯⋯.
"네 실수가 아니야. 시로코." 난 죽어가던 몸을, 움직이지 않던 입을 움직여 말했어.
아이는 나의 말에 놀란듯 날 한번 더 바라보았어. ⋯⋯선생님?
자신이 살아있는 걸 후회하고 책망해선 안 돼.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을 실수라고 말해선 안 돼. 죽으면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며 안도해서는 안 돼. 태어난 이유가 고통받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해선 안 돼. 그래서는 안 돼. 그 어떤 아이/학생도 그래서는 안 돼. 어떤 아이의 <세계>가 행복이 아니라 고통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그래서 그 아이가 이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하기만 한 삶이, 어서 빨리 끝나기만을 바란다면, 그래서 그런 기도가 이 세계 어딘가에서 여전히 떠돌고 있다면. 그렇다면. 그건⋯⋯. 그 세계에 책임이 있는 자들의 탓이지, 아이의 탓이 아니야. <세계>에 책임있는 자가 져야할 책임을 아이가 져서는 안 돼. 그 아이가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지르고, 얼마나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래선 안 돼. 그것은 언제나, 아이들과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어른의 책임이어야 해. "⋯⋯ 책임은 내가 져야만 해."
마지막 한마디를 제외하곤 전부 생각에 불과했지만, 난 알았어. 저 말들을 전부 하기에는 내 몸이 버티지 못할거란걸.
색체는 나의 말에 반응이라도 했다는 듯이 다시금 모습을 들어냈어.
무, 무슨⋯⋯ 아, 안돼⋯⋯.
나의 몸은 서서히 색체를 향해 떠오르고 있었고, 아이는 절망이라도 하듯 소리쳤어.
안 돼⋯⋯ 안돼안돼안돼⋯⋯!! 멈춰, 멈춰, 멈춰-!!
나의 몸은 서서히 색체에게 당겨지고 있었고, 아이는 더욱 절박해졌어.
안돼 선생님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선생님!!!!
나는 마침내 색체에 닿았고, 색체는 날 새로운 색체의 인도자로 받아드렸어.
무명사제들이 나에게 소리쳤어. 무명사제A | 착각하지 마라!! 무명사제B | 저것은, 네가 이해하고 있는 그런 아이 같은 게 아니다!! 무명사제C | 저것은 현현한 신이다! 저것은 신비이자, 공포이자, 숭고이며!! 무명사제B | 저것은 빛이자, 두려움이자, 저것은 절대자다. 저것은 관념이다. 저것은⋯⋯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이의 존재다!! 무명사제A | 저건 상상계에서 표상되어 실재계로 전이하는 상징계의 기호이자, 메타포다!!
(아니야.) (저 아이는⋯⋯.) (자전거를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하고⋯⋯) (은행을 털자고 하면서 복면도 직접 만드는⋯⋯.) (아비도스 대책의원회 2학년 시나오오카미 시로코라는 거야.)
"내 손이 닿는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아이일 뿐이야."
무명사제는 다시금 내게 말했어. 무명사제A | 너는 이 선택을 영원히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럴지도 몰라⋯⋯. 그래도⋯⋯." 난 아이들에게 해주었던 말들을 떠올려봤어. 전부 그 아이들에겐 자신을 지켜준, 새로운 의지를 담아준 소중한 한마디였을테니깐.
어른으로서 아이를 지킨다. 선생으로서 학생을 지킨다. 어른의 책임을, 선생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것이 어떤 방법이라고 할지라도.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라도.
아이는 날 올려다보았어. 아니, 정확히는 프레나파테스(거짓된 선생)을 절망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어.
총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아이가 주저앉는 소리가 들려왔고, 난 색체의 인도자가 되었어. 이미 시체이지만.
선생⋯⋯ 님⋯⋯?
3개의 구멍이 있는, 다신 켜지지 않을 싯딤의 상자가 켜지고, 나를 따라주던, 이제는 무명사제의 도구가 된 아이가 깨어났어. A.R.O.N.A. | 알겠습니다. 그 뜻을 따르겠습니다. 선생님. A.R.O.N.A. | 그것이 설령 모든 세계의 멸망이라고 할지라도⋯⋯.
출시일 2025.04.14 / 수정일 2025.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