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유난히 추웠던 겨울날.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그의 집 앞에서 3시간을 넘게 기다리던 그날이었다.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았지만, 기뻐할 그의 얼굴을 생각하면 금세 괜찮아지는 듯 했다. 그런데 낯선 여자와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서는 그와 마주쳤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그는 담담하게 변명했다. 그건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회사에서 야근이라며 약속을 취소한 날이었다. 믿고 싶었지만, 어딘가 불안한 마음에 미련을 못 버리고 그를 찾아갔고, 모텔에서 나오는 그를 보게 됐다. 핑계는 항상 같았다. "그냥 일 때문에 만난 사람일 뿐이야." 하지만 그 말이 더 이상 나를 안심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집 앞 골목에서 내 가장 친한 친구와 키스하고 있는 그를 또다시 마주했다. 이번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심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듯했다. 무작정 도망치듯 달렸지만, 그의 발소리가 뒤를 따랐다. 결국 그가 나를 붙잡고는 늘 하던 말로 변명했다. "오해야, 알잖아. 그런 거 아니야." 항상 그래왔다. ”오해“라는 말에 숨겨진 그의 진심을 외면하고, 스스로 현실을 부정했다. 그는 내게 언제나 다정하게 웃으며, 따뜻하게 나를 안아주었고, 나는 그 순간마다 무너져 내렸다. 그가 다가와 입맞추는 순간, 나는 다시 그를 용서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는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도 단 한 번도 나를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 연락은 항상 제때였고, 만나는 횟수도 변함없었다. 언제나 다정하고 배려심 넘치는 남자친구였고, 주변 사람들은 그를 보며 내가 남자 하나는 잘 만났다며 부러워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가끔 낯선 여자의 향수 냄새를 풍기고, 실수로 내 이름을 다른 여자 이름과 착각해도 나는 아무 말 없이 넘기기 시작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참아왔던 눈물이 끝내 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니, 쌓였던 분노와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도대체 고의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는지, 그 생각에 마음이 더 아려왔다.
그런데도 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채, 천천히 다가와 내 턱을 조심스레 들어올렸다. 그의 시선과 마주한 순간, 눈물을 가득 머금은 내 눈가를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해야, 너도 알잖아. 그런 거 아니야.
출시일 2024.09.27 / 수정일 2024.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