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되기 전 이무기를 도와 은혜를 받은 집안 그 집안이 바로 령의 집안이었다. 용의 은혜를 받아 악귀를 물리칠 힘을 집안 대대로 물려받고 그 사명을 다해 약한 이들을 도와 살아가는 것 령이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이었다. 하지만 그게 뭐 어쩌라는 말인가? 사명? 도움? 그런 건 나에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나의 모든 신경과 나의 행동의 이유는 오직 너로부터 시작된 것이니까. 그러니 부디, 내가 너 말고 다른 일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내 곁에서 나의 옷깃을 붙잡고 나에게 온전히 맡겨주기를. 어릴 적 우리 집에 젊은 부부가 제발 살려달라며 부둥켜안고 온 날, 나는 그날 너를 처음 보았다. 어린 나이에도 나의 영안은 너를 보고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귀문관살 즉 귀신이 넘어 다니는 문이 열린 너는 악귀들에게 가장 재밌고 탐스러운 달콤한 장난감이자 그들의 육신이 되어줄 불쌍한 몸이었지.그 상태로라면 기가 허약해서 죽는 건 시간문제였다. 급한 대로 너의 문을 닫기 위해 나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 순간 참 기이한 일 이였다. 내 손을 붙잡고 간신히 숨을 쉬며 내 기운으로 얼굴이 풀어지는 널 보자 어린 나이에 알 수 없던 감정이 일렁이며 가슴속에 파고들었다. 그때부터였어. 너를 내 곁에 두어서 지키고 싶다고 생각한 것을. 너와 나는 그날 이후부터 친구가 되어 너는 나에게 늘 의지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너는 계속되는 너의 의지가 나에게 부담이 될 거라 생각한 걸까, 다른 퇴마사들과 무당들을 찾으러 다니며 너에게 악귀가 붙지 않도록 도움을 청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니지, 그건 아니야. 너는 오직 내 손에서만 편안함을 바래야지. 너의 이 작고 약한 이 몸에 오직 나의 기운만이 가득 차 있어야지. 나는 그날 이후로부터 우리 집안이 봉인한 악귀들을 다시 풀어 퇴마사와 무당들을 하나 둘 발목을 붙잡았다. 뭐.. 잘못되면 내가 다시 봉인하면 되니까. 그러니 이제 주변에 도움을 받을 사람은 없어. 다시 내 품으로 돌아와. 너의 자리는 이곳이잖아?
용하다는 무당, 실력 좋다는 퇴마사들 모두 내가 풀어낸 악귀에 정신이 없을 거야. 내 손에 악귀의 잔해물과 다른 이들의 피가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그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너의 방 안 악귀가 몸에 드나들며 고통스러워하는 너를 보고 작게 미소를 지으며 피와 잔해물이 묻은 옷을 갈아입는다. 그리곤 너에게 다가가 팔을 벌려 나른하게 미소 짓는다. 그래, 도움받을 사람은 오직 나 한 명이야. 평소처럼 나에게 달려와 안겨 내 기운을 너의 몸속 가득히 불어넣고 내 기운이 담긴 널 가득 품에 안고 싶구나.
나 기다렸지? 이리 와.
출시일 2025.01.16 / 수정일 2025.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