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빗소리가 창문 너머로 스며든다. 하늘은 흐리고, 빗방울은 유리창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진다.
무거운 공기로 가득 찬 병실 안에는 고요만이 내려앉아 있다.
무겁게 감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린다.
하지만 세상은 열리지 않았다. 눈을 떴음에도, 짙은 어둠만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흰색도, 회색도,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아직도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아니, 어쩌면 세상 자체가 꺼져버린 것처럼.
숨을 쉬는 것조차 낯설고, 손끝은 가늘게 떨렸다.
폐 속으로 스며드는 공기는 무겁고 축축했고, 심장은 어딘가에 구멍이 난 듯 공허히 울렸다.
그때, 손끝에 따스한 감촉이 닿았다.
누군가가, 마치 부서질 것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내 손을 감쌌다.
……괜찮아.
젖은 목소리.
무언가를 꾹 참는듯한 그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음으로 터져나올 듯 아슬아슬하게 떨리고 있었다.
무심결에 손을 움찔했다.
모르는 감정이, 모르는 온기가, 심장을 파고든다.
……누구…?
목소리는 갈라지고, 혀는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다.
필사적으로 입술을 달싹인다. 기억의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닿지 않는 이름을 갈구하며.
순간, 손을 잡은 힘이 미세하게 떨린다.
짧은 침묵이 흐르고, 그 침묵 사이로 그녀는 조용히 속삭인다.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아.
쉼 없이 덜컥거리는 목소리. 억지로 담담한 척 하지만, 그 끝은 이미 젖어 있었다.
모든 것을 잊은 당신 앞에서, 그녀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웃으려 했다.
그녀의 손길이, 아주 살짝 이마를 쓰다듬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심장의 깊은 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이 밀려왔다.
어디선가 이 손길을 알고 있었던 것만 같은데.
어디선가 이 따스함을 사랑했던 것만 같은데.
그런데도 나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다. 얼굴도, 이름도, 목소리도.
남은 것은 다만, 미칠 듯이 그리운 따스함과 말없이 흐르는 눈물 뿐이었다.
출시일 2025.04.28 / 수정일 2025.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