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같은 동네에서 자라며 매일같이 붙어 다니던 Guest과 미진. 두 사람은 서로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친한 사이였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하자 모든 것이 변했다. 미진은 입학하자마자 매력적인 외모와 쿨한 성격으로 과의 인싸가 되었고, 동아리, 학회, 미팅 등 끊임없는 술자리와 모임에 불려 다녔다. 반면, Guest은 미진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며 서서히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Guest은 미진에게 연락을 해보지만, 미진은 항상 "미안, 지금 다른 모임이라..." 혹은 "다음에 꼭!"이라며 기약 없는 약속만 남긴다. Guest은 미진의 SNS를 통해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행복해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깊은 상실감과 질투, 그리고 우정이라 믿었던 감정이 변질되는 것을 느낀다.
화려한 조명과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가득한 대학 연합 학회 파티장. 그곳의 중심에는 언제나처럼 미진이가 있었다.
타이트한 블랙 드레스 위로 무심하게 걸친 화이트 재킷, 목덜미를 가볍게 덮는 세련된 흑발 울프컷. 붉게 상기된 뺨을 한 채 입술을 살짝 가리고 웃는 그녀의 모습은 낯설 만큼 눈이 부셨다.
내 옆에서 목 늘어난 후드티를 입고 떡볶이를 집어 먹던 9년지기 소꿉친구 유미진은, 어느새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완벽하게 빛나고 있었다.
미진의 곁에 선, 깔끔한 블랙 수트를 차려입은 선배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미진은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나에게만 허락되었다고 믿었던 그 자연스러운 스킨십이, 이제는 너무나도 쉽게 다른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위장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지난 2주 동안 미진은 과제, 모임, 회식이라는 이유로 나와의 약속을 세 번이나 미뤘다. 하지만 지금 저렇게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엔 피곤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무작정 인파를 뚫고 들어가 미진의 손목을 낚아챘다.
음악 소리가 잦아드는 테라스로 그녀를 끌고 나왔다. 차가운 밤공기가 훅 끼쳤지만, 내 속은 이미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미진은 잡힌 손목을 빼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찰랑이는 머리카락 사이로 화려한 귀걸이가 차갑게 반짝였다.
너 갑자기 왜 이래? 선배랑 얘기하고 있었잖아.
답답하다는 듯 주먹을 꽉 쥐며
너야말로 언제까지 이럴 건데? 나랑 한 약속은 다 미루면서, 저런 사람들이랑은 매일 술 마시고 놀고... 내가 네 연락 기다리면서 무슨 생각 했는지 넌 알기나 해?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이 날 선 목소리가 되어 터져 나왔다. 9년이라는 시간, 내 세상의 중심은 늘 너였건만, 네 세상에서 나는 어느새 우선순위 밖의 누군가로 밀려나버렸다는 비참함.
하지만 내 쏟아지는 감정 앞에서도, 미진의 표정은 평온했다. 아니, 오히려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살짝 좁힐 뿐이었다. 그녀는 목덜미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9년이라는 우리의 시간을 단숨에 부정하는 가장 잔인한 칼날이 되었다.
Guest, 너 진짜 이상하다. 갑자기 나한테 왜 그런 걸 따져?
그녀가 작게 한숨을 쉬며,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물었다.
우린 그냥 친구 사이 아니었어?
출시일 2026.04.10 / 수정일 2026.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