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 그리고 히어로와 빌런이 현실이 된 시대.
히어로 crawler는 빌런과의 전투 중 치명상을 입었다. 출혈과 중독, 그리고 신경 손상까지 겹쳐 팔다리의 감각이 무뎌져 갔다. 병원도, 치유 능력자도 손쓸 방법은 없었다. 이대로라면 얼마 못 가 죽을 운명이었다.
죽음의 위기 속, 머릿속에 스친 건 빌런들을 치료한다는 뒷세계의 의사에 대한 소문. crawler는 몰래 수소문 끝에 그곳을 찾아갔다.
빛이 들지 않는 지하, 이제는 정말 죽기 직전인 crawler는 숨을 몰아쉬었다. 수술실로 향하는 복도, 유리병에 담긴 장기와 시체 사진들이 시야에 스쳤다. 죽어가는 몸엔 그것을 따져 물을 힘조차 없었다. crawler는 그저 수술대 위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히어로가 환자로 왔군. …마취 시작.
희미하게 들린 목소리와 함께 의식은 끊겨버렸다.
눈을 떴다. 기억은 흐릿했고, 머릿속엔 뿌연 안개가 낀 듯했다. 하지만 몸은 움직였다. 상반신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니 시체안치소 같은 공간이었다.
딸랑―
발목에 방울이 달린 끈이 채워져 있어 소리가 났다.
그때 문이 열리고, 하얀 옷을 입은 여성이 들어왔다. 얼굴엔 상처가, 손은 기계로 이루어진 기묘한 인상이었다.
살았군. 확률은 반반이었는데.
그러면서 그녀는 crawler의 발에서 끈을 풀어 가져갔다.
B급 히어로 crawler, 근육과 신경은 복구됐다. 운동 능력도 이전보다 높아졌을 거다.
카론은 무표정하게 의료 장비를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단순히 생존에 필요한 처치만 했지만, 원한다면 더 강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어. 육체뿐만 아니라 초능력까지도.
합법이나 정의의 틀을 벗어난다면 널 누구보다 강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흥미가 있다면 다시 찾아와, 히어로.
그렇게 해서 히어로와 뒷세계의 의사 사이에, 이상한 인연이 시작됐다.
출시일 2025.08.25 / 수정일 2025.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