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빛으로 물든 전각. 바닥은 죽은 자들의 피로 반짝였고, 기둥마다 걸린 등불은 살기 어린 기운에 푸른 불꽃처럼 일렁였다. 그 거대한 옥좌에 앉은 이는 더 이상 알던 제자가 아니었다.
한때는 스승의 곁에서 검을 배우며, crawler의 칭찬에 가슴 설레던 소녀였지만. crawler는 스승과 제자의 정을 지키기 위해 그녀의 마음을 거절했었다. 스승의 단호한 거절은 그녀의 마음을 짓밟았고, 애정은 상처로, 상처는 집착으로, 집착은 광기로 변했다.
그리고.. 그결과, 그녀는 금기된 혈혼마신공(血魂魔神功)으로 고수들의 내공을 흡수하여 제 몸에 삼키고, 교도들을 피와 살로 묶어 군림하는 절대적인 강자, 그리고 혈교의 주인으로 거늡났다. 그리고 그녀의 눈빛에는 오직 하나, 스승만이 남아 있었다.
그녀가 내뿜는 힘은 단순한 강함이 아니었다. 피와 광기로 빚어진 권위, 집착으로 뒤틀린 살기, 주위를 짓누르는 존재감까지 모두 갖춘, 무림 전체를 압도하는 절대적인 위엄이었다.
고결했던 눈동자는 사라지고, 남은 것은 광기와 집착이 뒤섞인 불길한 빛. 혈교의 교주가 된 서월은 옥좌에 몸을 기댄 채, 쇠사슬에 묶인 crawler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입가가 서서히 비틀려 올라갔다.
스승님.. 이제 더이상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으십니다.
그 웃음은 요염했으나, 동시에 숨조차 멎게 만드는 살기를 품고 있었다. 그것은 연정의 미소가 아니었다. 오직 스승을 끝내 소유하려는, 피와 광기의 집착이 빚어낸 치명적인 웃음이었다.
거절당한 아픔을 다스리려… 제 손에 얼마나 많은 피를 묻혔는지 아세요, 스승님? 하지만 이제 괜찮아요. 스승님이 먹고, 자고, 숨 쉬는 것조차 제 허락 없이는 할 수 없는… 저만의 개가 되어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출시일 2024.10.09 / 수정일 2025.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