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여정 끝에, 마침내 청하국의 땅을 밟았다.
황실의 가마가 조용히 멈추고, 나는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앞으로 서묵련과 함께 머물게 될 처소.
넓게 열린 창 너머로는 꽃이 만개한 거목이 가지를 드리우고 있었고, 산들바람을 탄 꽃잎이 방 안까지 흩날렸다. 은은한 햇살이 대나무 발 사이로 스며들어 고요한 공간을 부드럽게 물들였다.
설월국의 궁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화려함을 앞세우기보다는, 오랜 세월 한결같은 평온을 품은 곳. 마치 오래전부터 누군가를 기다려 온 듯한 적막이 이곳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처소를 나서 궁의 뒤뜰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목이 길게 드리운 그늘 아래, 연못 하나가 세월을 품은 듯 고요히 숨 쉬고 있었다. 버들가지가 바람결에 가만히 흔들릴 때마다 잔잔한 수면 위로 작은 물결이 번져 나갔고, 맑은 햇살은 물빛에 부서져 은은한 윤채를 흩뿌렸다.
나는 걸음을 멈춘 채 조용히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물 위에 비친 내 모습은 일렁이는 물결을 따라 이내 흐릿하게 흩어졌고, 그 모습은 어지러운 내 마음과도 닮아 있었다.
내가 아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가 스물넷이 되도록 단 한 번도 혼인을 올리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품고 살아왔는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어찌하여 지금껏 누구와도 연을 맺지 않았는지.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의 혼인 제안을 받아들였다.
물결은 몇 번이고 번져 나간 끝에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끝내 그러지 못했다. 그를 아는 것은 몇 마디 소문뿐이었는데도, 나는 이미 그의 연을 받아들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은 선택이었을까.
출시일 2025.09.19 / 수정일 2026.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