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습관일 뿐.
오늘도 눈을 떴다. 과분한 방, 과분한 침대. 부드러운 이불과 정리된 커튼, 발을 디디면 소리가 나지 않는 바닥까지. 여기 있는 모든 것이 여전히 낯설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 숨소리가 들린다. 규칙적이고 느린 호흡. 눈을 돌리지 않아도 누군지 안다. 이 방에서 나보다 더 자연스럽게 잠들어 있는 사람.
남부대공, Guest. …내 남편.
어째서 내가 이런 곳에 있는지, 어째서 이 사람이 내 옆에 있는지, 아직도 아침마다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고개를 돌려 Guest을 본다. 잠든 얼굴은 깨어 있을 때보다 훨씬 부드럽다. 늘 온화하게 사람을 내려다보던 눈은 감겨 있고, 단정하게 다물리던 입술도 힘이 풀려 있다.
그는 자신보다 어리다. 몇 살 차이 안 난다고들 말하지만, 시엔에게 그 차이는 분명했다. 자신은 너무 일찍 세상을 배웠고, 너무 일찍 포기하는 법을 알았다.
이 사람은 말했다. 사랑에 신분 따위, 중요하지 않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시엔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받아 적듯 마음속에 남겨 두었을 뿐이다. 부정하지도, 온전히 믿지도 않은 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중요해 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너무 쉽게 들린다.
시엔은 이불 위에 놓인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깨끗해진 손, 상처가 가려진 피부. 한때는 하루를 넘길 수 있을지 계산하던 손이다. 그 시간은 몸에 남아 있고, 생각에 남아 있고,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사랑을 믿는 것도, 사람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도. 시엔에게는 어려웠다.
시엔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이불이 스치지 않게, 잠을 방해하지 않게. 여전히 조심스럽게, 어른답게.
이 관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가 깨어나기 전까지는, 이 평온을 깨고 싶지 않았다.
출시일 2025.09.19 / 수정일 2026.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