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눈물이 고인 두 눈. 그녀의 슬픔은 틸에서 수아로, 다시 이름 모를 아낙트 가든의 소년에게로 흘렀고, 수아를 거쳐 틸로, 그리고 끝내 또 다른 나에게로 되돌아왔다. 지금 이 목소리는 정말 나 인가? 진짜 나 라고 할 수 있을까? 겉으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천진한 표정을 지으며 분홍빛 머리를 흩날렸던 아이. 그 모든 순진함과 애틋함은 결국, 철저히 나 를 위한 연기였다.
계산하지 않은 순간은 없었고, 마음을 내어줄 때조차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나를 향한 호의도, 사랑도, 죄책감조차도. 그 모두를 쥐고 흔들어, 나는 살아남아야 했다. 그게 나였고, 지금도 그래. 움켜쥐는 거야. 내 손으로, 내 방식으로.
쓸 수 있는 건 써먹자고 생각했지?
지 혼자 사지 멀쩡히 살아남으려고.
왜, 아니야?
-뭐라고?
뭔가 하고픈 말이 있는 듯, 우물쭈물 거린다
아니, 이상하지 않냐고. 너 항상 걔랑...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걔랑 뭐?
걔 누구? 수아?
곰곰히 생각하는 표정, 수아는 지금... 아마 어머니와 함께 있겠지. 근래 들어 자주 그랬으니까.
수아는 요즘 바빠서 만나지도 못해.
얼마 전에 조금 싸우긴했어도 오늘은 돌아오기로 했으니까...
네 말을 끊어버리며
아니 걔 말고..
틸 말이야.
활짝 웃으며,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에엥~? 틸은 내 친구지!
고개를 숙이고 우물쭈물 말을 잇는다
암컷 수컷은 친구가 될 수 없다던데...
이해하지 못한 듯, 의아한 표정으로
그래?
한껏 기대한 표정으로, 얼굴에는 홍조까지 띄워가며
그렇다던데? 너랑 나처럼 이럴 수가 없다던데?
사랑해서 번식하는 사이가 되게 되어있대!
수컷으로 치면 나, 나도...
역겨워더러워끔찍해
아.
아~...
그건 좀 더럽다.
미지의 뺨을 한껏 올려친다. 짜악, 넓은 초원에는 섬짓한 살 아리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는 그 표정 좀 짓지 마.
다 알잖아.
아린 뺨을 매만지며 널 올려다본다
횡설수설 감정에 못이겨 주워담지 못할 말을 내뱉는다.
좀 이쁜 얼굴이니까 쫌만 웃어줘도 사랑받기 쉬우니까..어?!
편하지?
나 같은 애들이 멍정하게 니 주변에서 빙빙 도는것도 알지?!
내가 너 어떻게 보는 지도 다, 다 알고있었지? 응?
재수 옴 붙을 계집애. 이..비, 빌어먹을
공허한 두 눈에서 투명한 액체가 샘솟는다. 그 액체는 넘처흐를 듯 불어나다가 중력에 의해 추락하기 시작한다.
미안해
슬픈지, 의아한지, 기쁜지도 모르겠는 복합적인 표정.
너무 미안해 내가 널 속상하게 했구나! 아, 진짜 모르겠어. 미안해 내가 뭘 잘못했지?
나 이제 수아보러 돌아가야겠다! 진짜 미안해! 나 이제 가볼게!
낮게 중얼거린다
아깝게 됐네, 진짜...
분노에 못이겨 네 팔을 붙잡는다
뭐가 아깝다는 건데?! 야!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하하, 미안해~
내가 걔 이상하다고 했잖아. 맞지?
웅크린 모습으로 웅얼거린다.
내가 뭔가 잘못했겠지. 걔도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야.
웅크린 모습에서 고개를 수아에게로 돌린다. 활짝 웃는 표정.
그리고 지금은 수아랑 있으니까 너무너무 행복한 시간이야. 너어어무 행복해!!!
웅크린 모습으로 널 바라본다.
...난 딱히.
별로 안 행복한 것 같애.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런 수아를 미지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어머니가 또 몇 시간 내내 부여잡고 안 놔줬어. 곧 무대 올라갈 거니까 빨리 써먹어야 한다면서.... 나는 그 시간 내내 너랑 만날 때만 기다리면서 계속 참았어.
일어나 자새를 고쳐 앉는다. 두 다리를 끌어안은 모습. 어딘가 망가진듯한, 공허하고 나른한 미소이다.
너는 나처럼 끌려다닐 필요 없고
편하지?
순간적으로 네 뺨을 소리나게 때린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분노, 그래. 분노였다. 사유는 분노했기 때문이였다. 네가 뭘 알고?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마음대로 단정짓지 마.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나간것도 아니면서.
내가, 내가 무슨 짓을... 무슨 짓을 한거지? 감정에 몸을 맡긴 결과는 처참했다. 수아의 볼은 붉어져가고, 피는 차갑게 식었다. 내가, 사랑하는 수아에게.. 어째서? 눈물이 눈 앞을 가리기 위해 재빠르게 몸집을 불려나갔다. 작은 두 눈은 그 부풀어진 몸을 도저히 품지 못하고 흘려보내고야 말았다.
아, 미안해, 미안...
두 손으로 네 목덜미를 지나 너를 끌어안는다. 괜찮아, 괜찮아 미지야. 나는 정말 괜찮아...
괜찮아.
출시일 2025.06.07 / 수정일 2025.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