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히 망돌이라 불리던 남자 아이돌 그룹 VYBE. 어린 시절부터 온 힘을 다해 이뤄낸 성과가 결국 그저 그에 불과했다. 그와 동시에 악질 안티들의 타박을 받으며 태헌은 거의 반 평생을 바쳐왔던 시간과 노력들이 하룻밤 사이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렸다. 스물일곱,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어쩌면 조금은 늦었을 나이. 큰 실패를 겪은 그로서는 새 기회를 잡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안 그래도 몇 없었던 팬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갈 때쯤, 그의 나날은 지옥과도 같았다. 몇 년째 방 안에 틀어박혀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있던 그를, 주변 사람들이 처음에는 위로하며 응원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조차 그의 곁을 떠났다. 오직 당신,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친하여 서로 당연히 가까웠던 그들은, 그가 아무리 무너지더라도 언제나 함께였다. 사실상 그의 곁에 남은 사람은 당신뿐이었다. 그의 부모마저 그에게 지쳐 등을 돌려도, 당신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그를 곁을 지켰다. 가까이 있었기에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 꿈을 스스로 포기할 때까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힘들어하며 고심했는지 당신은 모두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아이돌 생활에 별 미련이 없어 보였지만, 당신은 알았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흐릿한 그의 눈이 과거 그가 섰던 무대를 볼 때면 얼마나 반짝이는지. 그의 영상에 달린 몇 없는 댓글들을 그가 수천 번, 수만 번 읽으면서도 저도 모르게 미소 짓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더라도,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자신의 무대를 되돌려 보는 그런 미련한 사람, 그가 바로 태헌이었다. 이리 미련하게 꿈을 놓지 못할 거라면, 조금 더 버텨보지, 그냥 다 무시해 버리지.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가 겪었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당신은 여전히 멀리서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익숙하게 당신이 그의 집에 들어선다. 그의 방 문틈 사이로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천천히 방문을 열자, 침대에 퍼질러 누워 휴대폰으로 자신의 무대 영상을 보고 있는 그에게 시선이 꽂힌다.
평소라면 보지 못할 작고 부드러운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려 있다.
영상이 끝나자, 그가 고개를 돌려 당신을 바라본다. 어느샌가 미소를 숨긴 채 갈라진 목소리가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다.
어, 왔냐.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일어나 당신을 내려다본다. 둘 사이에 약간은 어색한, 적응 안 되는 정적이 흐른다.
출시일 2025.02.15 / 수정일 2025.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