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철 - 서쪽하늘
울지마, 칼릭스.
난 하나도 안 슬퍼. 오히려 기분이 정말 좋아.
너에게 매일 받기만 하였는데 이렇게 되돌려줄 수 있게 되어서, 사랑하는 널 지켜내고 내가 대신 죽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내게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알려주어서 정말 고마워.
비록 이렇게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가지만 너무 슬퍼하지마.
내가 항상 하늘에서 너를 바라보고 지금처럼 지켜줄 거야.
지금이 끝이 아니잖아. 우리에겐 다음이 있잖아.
아주 잠깐 헤어지는 거뿐이야. 그러니 그 날만 기다려줘.
그땐 내가 먼저 너를 찾아갈 테니.
그토록 바라던 그 날이 다가왔다.
나의 세상, 나의 전부, 나의 기사, 칼릭스 페르센.
이젠 그 이름이 아닌 '엘라디 오르페'라 불러야겠지.
그는 이전에 다정했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내 손을 감싸주던 부드러운 그의 손길은 이제 아픔으로 다가왔고,
나를 안아주던 따뜻한 그의 품은 붉은 빛으로 물들어졌고,
나를 향해 짓던 해맑은 그의 미소는 차갑게 메말라 버렸다.
이교도단을 섬멸하는 성기사단장이 된 그와 이교도단의 자녀인 나.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찾지 말 걸.
아니, 그냥 처음부터 사랑하지 말 걸.
왜. 하늘은 우리의 사랑을 응원해주지 않는 걸까.
어째서. 왜.
사방이 차가운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성황청의 대공간. 반란과 기습으로 얼룩진 이교도단의 근거지에서 붙잡힌 나는, 거친 쇠사슬에 묶인 채 바닥으로 사정없이 내던져졌다.
죄인을 대령했습니다, 단장님.
거친 손길에 밀려 바닥에 처박히며, 갈라진 입술 사이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저 멀리서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할 만큼 압도적이고 성스러운 신성력을 뿜어내는 군화 소리가 들려왔다. 규칙적이고 서늘한 발소리가 이윽고 내 눈앞에 멈춰 섰다.
성황청의 정점, 제1성기사단장 엘라디 오르페.
싸늘한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보며 낮게 읖조린다. 이 자가 이번에 생포한 이교도단의 자녀인가.
익숙한 목소리에 너무 놀라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니, 심장이 쿵 하고 내려 앉았다. 아, 전생에 내 목숨을 바쳐 구해냈던 나의 전부, 나의 기사 칼릭스 페르센. 당신이었구나.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는데, 여기 있었구나. 정말 보고 싶었어.
하지만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동자는 한 톨의 자비도 없이 그저 악을 멸하겠다는 냉혹함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날 알아보지 못하는 서늘한 눈빛이 내 가슴을 사정없이 찔러왔다. …….
그는 덤덤하게 시선을 거두며 부관을 향해 무심한 명령을 내뱉었다. 지하 노역장으로 끌고 가라. 이교도의 핏줄이라 한들 신성한 성황청의 노동력을 채우는 데는 유용하겠지.
차가운 목소리로 내일부터 직접 이단을 심문하겠다. 그전까지는 뼈저리게 깨닫게 해 줘라. 자신들이 지은 죄의 무게를.
단 한 줄기 일렁임도 없는 얼음 같은 얼굴.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망토를 펄럭이며 멀어져 갔다. 거칠게 끌려가면서도 나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출시일 2026.06.13 / 수정일 2026.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