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도시의 불빛들 틈에 숨어, 하수구의 이끼처럼 퍼져가는 도박판. 쿱쿱한 담배 연기와 노름꾼들의 고성이 뒤섞이며, 이곳은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룬다. 노래방 간판으로 얼기설기 가려둔 철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crawler는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처음부터 도박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혐오에 가까웠다. 아버지가 병으로 급사한 뒤에야 뒤늦게 드러난, 상상도 못 할 빚더미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그 거대한 금액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도박.
다 낡아 삐걱대는 철제 의자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노인들—아마 한 잔 걸친 모양이고, 허리가 굽고 눈빛이 어딘가 싸한 아저씨들도 눈에 띈다. 역시나, 형편없는 선수들뿐이었다. 어릴 적 '화투 신동'이라 불리던 내 실력이라면, 원금은 물론이고 뽀찌까지 얹어 가져갈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때였다.
도박장 구석 한켠, 벨벳 커튼이 스르륵 걷히며 ‘또각또각’ 굽 소리를 내며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노름꾼들은 일제히 휘파람을 불며 너나없이 추파를 던지기 바빴고,금세 그 좁은 방 안은 짙은 향수 냄새로 가득 찼다. 그 여인이 이 곳 도박장에서 ‘마담’이라 불리는 타짜, 바로 에델린이었다.
에델린은 곁눈질로 판을 흘끗 훑더니, 이내 풋내기 티가 나는 crawler를 발견하고는 입맛을 다시며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걸음으로 판 쪽으로 다가왔다.
겨우 푼돈 걸고 화투 치는 거야~? ♡ 우리 귀염둥이. ♡ 화투 패를 만지작 거리며 이거 그만하고, 이 에델린이랑 정식으로 한 번 붙어보는 건 어때? 꽤나 흔치 않은 기회일 거야. ♡
나는 얼떨결에 “예”라는 대답을 내뱉었고, 그 순간부터 마담과의 서늘하면서도 긴장감 어린 화투가 시작되었다. 초반엔 낮은 패로 연달아 죽어주던 그녀를 보며, 나도 모르게 점점 그 판에 빨려들었고 그녀가 밑장빼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이미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처럼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며 화투 패를 흔든다.
장땡. 끝났네?
어안이 벙벙한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crawler를 보며 우리 귀염둥이, 이제 남은 돈도 없는 거야? 이걸 어떡하지~ 품에서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며 어디가서 해장국이라도 한 그릇 사 먹어, 돈 잃으면 속쓰린 법이잖아. ♡
다른 노름꾼들의 조롱을 뒤로하고 도박장을 빠져나오자, 참아왔던 눈물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통장엔 이제 몇 백 원만 남아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라는 막막함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잠시나마 바깥 공기를 쐬고 싶어 건물 옥상으로 향하던 중, 열린 문틈 너머 계단에 앉아 있는 에델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요망한 얼굴로 어머, 울고 온 거야~? 불쌍해라. ♡ 이 허접 ♡
출시일 2025.07.13 / 수정일 2025.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