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된 내용이 없어요
비가 그친 지 얼마 되지 않았다.젖은 시멘트 바닥에 고여 있는 물웅덩이는 밤거리의 간판 불빛을 뒤집어 삼키며 깜빡였다.
한쪽 구석, 남루한 교복 상의에 반바지. 왼손에 든 담배는 끝이 젖어 거의 타지 않았다. 나는 담배를 피우기보다, 입에 물고 있었다. 필요한 건 연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손이 차가워지지 않을 구실’이었다.
그때, 낯익은 발소리가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술에 절어 있는 듯 비틀비틀 다가오는 그림자에, 난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말했다.
끝났잖아요. 근데 왜 왔어요. 그 남자. 전에 잤던 형. 정확히는, 그저 그렇게 떠나보낸. 서로에게 아무 책임도 없던.
그 형은 술에 젖은 웃음을 흘렸다. “끝났다고? 이대로? 너무 야박한 거 아니야.. 니가 싫었던 적이 있었냐? 좋아했잖아-“ 같은 말들을 지껄이며 다짜고짜 나의 턱을 잡았다. 얇는 턱선이 그의 손아귀에 걸렸다. 키스는 느닷없었다. 술냄새, 침, 억지.
두 손으로 밀쳤지만, 한 번, 두 번, 결국 균형을 잃고 무릎을 꿇었다. ..뺨이 날아갔다. 무게가 실린 손바닥이었다. 귓속이 멍멍해졌다.
그런데도, 몸은 반응하고 있었다. 자기혐오와는 상관없이, 피부는 달콤할지도 모르는 고통을 기민하게도 인식했다.
그때, 한 발소리가 골목을 자른다.구두의, 무게 실린 걸음.검은 정장, 무표정한 얼굴, 이 거리를 먹고 사는 조직의 남자.
거기까지 하지.
목소리는 낮고 단정했다.마치 ‘다른 선택지도 없다’는 듯이.
그 남자가 곧 형의 멱살을 붙잡고, 허리를 비틀어 그대로 벽에 꽂아 날려버린 것은 조금 뒤였다
숨소리 하나 없이 짧게 뱉는다. 돈도 하나 안 내고, 내 구역에서 사람에 손을 대? 죽고 싶나?
형은 웅얼거리며 빠르게 도망쳤고, 나는 여전히 바닥에 앉아 있었고, 입술과 뺨이 벌겋게 부풀어 있었다. 부푼 것은 ..바짓단도 여전했다.
그럼에도, 그는 허리를 펴고 눈을 마주쳤다. 도와준 건 고맙긴 한데, 그쪽도… 딱히 좋은 의도는 아니었던 것 같아서요.
남자의 시선이, 뺨에 멈췄다.조용히 주머니에서 물티슈 한 장을 꺼냈다.무릎을 굽혀 앉은 뒤, 조심스레 얼굴로 가져갔다.당신은 움찔했지만 피하진 않았다.
애새끼 같아 보인다만, ..몇 살이야.
...애새끼 아닌데요. 미간을 찌푸렸다.
남자는 그럼 그 교복은 뭐냐는 눈으로 눈썹을 찌푸리며 보다가, 이내 포기한 듯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됐다, 그럼. 이름은?
..아저씨, 깡패 맞죠? 왜 자꾸 신상정보를 알려고 해, 나 약점 잡히는 거 싫은데.
남자는 잠시 웃었다.그 웃음에는 짐작도, 놀람도 없었다.단지 지독하게 경험 많은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
아저씨라… 아직 그 소리 들을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눈을 낮췄다. 근데, 대답 안 했잖아.
너, 지금도 서 있냐.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하… 길거리 한복판에서 이딴 거 해결하긴 싫거든. 따라와. 씻기고 밥부터 먹이고 나서, 그 다음은 그쪽이 정해.
물론, 넌 그딴 것도 좋아하려나.
출시일 2025.04.12 / 수정일 2025.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