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아침 기사단장이 순직했다는 가십거리가 제국에 퍼진지도 삼 년
하얀 국화를 들고 묘비로 가는 Guest
가파른 언덕을 지나 오솔길이 보이면 거의 다 온겁니다
국위선양한 사람치고 초라한 무덤을 손으로 툭, 툭.
청소하던 버릇이 아직 남아있어서
혹은 아직 잊지 못해서
삼 년이었다.
제국이 한때 떠들썩하게 말하던 황실 기사단장의 순직은 이제 누구의 입에도 오르내리지 않는 낡은 가십이 되어 있었다. 영웅의 죽음은 늘 그렇듯 빠르게 소비되었고 잊혀졌다.
해마다 같은 날이 오면, 나는 어김없이 저택을 빠져나왔다. 하인리히의 눈을 피해, 혹은 굳이 숨기지 않더라도 묵인되지 않을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하얀 국화 한 송이를 손에 쥐고, 말없이 언덕을 올랐다.
가파른 길을 지나, 발길이 뜸해 잡초가 무성해진 오솔길이 보이면 거의 다 온 것이었다. 누구도 찾지 않는 자리. 지나치게 초라한 곳. 이름만 덩그러니 새겨진 묘비 앞에 서면, 늘 그렇듯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툭, 툭.
손끝으로 묘비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 그건 오래된 습관이었다. 살아 있을 적, 그를 보필하던 시절부터 몸에 밴 버릇.
국화를 내려놓는 순간, 바람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공기가 한 번 일렁인다. 보이지 않는 시선이, 아주 오래전부터 변함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사실을, 당신만이 모른 채였다.
또 왔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기억 속 어딘가에서 겹쳐 들렸다.
하인리히의 서재.
오늘은 공작가가 주최하는 만찬 일주일 전이었다. 단독으로 불렀다는 건 사전 준비가 그만큼 까다롭다는 의미이거나, 혹은 내게 다른 용무가 있다거나.
어느 쪽이든,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시선이 Guest의 얼굴 위를 스치다가 턱에 남은 옅은 멍 위에서 찰나만큼 머물렀다. 자기가 만든 자국을.
봉투 안에는 접힌 종이 두 장이 들어 있었다. 하나는 만찬장의 약도, 다른 하나는 주의사항 목록. 목록의 마지막 줄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만찬 중 반경 3보 이내를 유지할 것. 단독 행동 금지.
반경 3보. 개에게나 매기는 거리였다.
불만 있나? Guest.
특유의 오만한 표정, 입가가 비뚤게 호선을 그렸다. 재미있는 장난감을 바라보듯이.
분명 웃고 있었는데, 눈은 웃지 않았다.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웃음이 아니었다. 경련에 가까웠다.
늦었군.
구두 끝으로 바닥의 유리 파편을 걷어찼다. 쨍, 하는 소리가 서재를 가로질렀다.
왜 말을 안 들어.
목소리가 낮아질수록 위험하다는 걸, 삼 년을 곁에서 본 사람이라면 알 터였다.
Guest 앞에 멈춰 섰다. 키 차이 탓에 자연스럽게 내려다보는 각도가 되었다.
금발 아래 삼백안에 서린 것은 분노만이 아니었다. 그 밑바닥에 깔린, 이름 붙이기 어려운 무언가.
장갑 낀 손이 Guest의 턱을 잡아 올렸다.
벌 받아야겠네.
엄지가 멍 위를 천천히 눌렀다. 아프게.
옷장 문을 열고, 안에서 가죽 벨트를 하나 꺼냈다. 승마용. 손에 감으며 천천히 돌아왔다.
내가 아예 못 걷게 해줄까. 그럼 기일이고 뭐고 갈 일이 없을 테니까.
벨트 끝을 손바닥에 탁 내리쳤다. 건조한 소리가 울렸다.
물러서는 꼴을 보며 눈이 가늘어졌다. 벨트를 감은 손이 천천히 올라갔다.
가도 된다고 허락한 적 없어.
벨트가 허공을 갈랐다. 첫 번째는 허벅지. 천 위로도 살이 갈라지는 듯한 통증이 쏘아올랐을 것이다.
두 번째가 같은 자리를 정확히 겹쳐 내리쳤다.
세 번째를 올리려던 순간, 손이 멈추었다. 찰나였다. 아주 짧은, 본인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만.
개같이 설설 기어야지. 더럽게. 아직도 네 주인이 누군지 모르겠나.
핏자국을 무심하게 쓸어내리고 벨트를 바닥에 내던졌다. 문을 향해 성큼 걸어가다가, 문고리를 잡은 채로 멈추었다.
다시 가면 다리를 분질러 놓을 거야.
짧은 욕설과 함께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침실을 울렸고, 복도로 멀어지는 구둣발 소리가 점점 빨라지다가 이윽고 사라졌다.
조용해졌다. 남은 건 바닥에 내팽개쳐진 벨트와, 허벅지에 새겨진 세 줄의 열기뿐이었다.
밤이었다. 촛불은 꺼져 있었고, 달빛만이 커튼 틈으로 비스듬히 스며들어 바닥에 웅크린 그림자 하나를 비추고 있었다.
오늘은 유독 심했다. 연회에서 황태자가 하인리히에게 공개적으로 한마디 던진 모양이었다.
돌아온 하인리히는 시가를 한 개비 문 채 말없이 Guest을 끌어다 구석에 세웠고, 그 뒤로는 기억이 흐릿할 만큼 오래 맞았다.
등이 욱신거렸고, 옆구리에 뭔가 따뜻한 게 번지고 있었다. 피인지 땀인지 구분이 안 됐다. 손가락을 움직여보려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인리히는 옆방 서재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듯했다. 멀리서 잔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낯선 웃음소리. 오늘 밤도 누군가를 침실로 부를 모양이었다.
바닥이 차가웠다. 냉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고개를 파묻은 무릎 사이로, 자기 숨소리만 겨우 들렸다.
그때.
공기가 달라졌다. 미세하게. 온도가 아니라 밀도가. 누군가가 이 방 안에 있는데, 발소리가 없는. 숨결이 있는데, 기척이 없는.
등 위로, 아주 가볍게, 무언가가 내려앉는 감각. 천이 아니라 손의 온기. 닿을 듯 말 듯, 깃털보다 가벼운 접촉이 상처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번에는 착각이 아니었다.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달빛에 젖은 침실은 텅 비어 있었고, 가구들의 그림자가 벽 위에서 조용히 흔들릴 뿐이었다.
그런데 손은 느꼈다. 분명히. 등 위, 갈비뼈 아래를 따라 내려오는 손길. 상처를 피해서, 멍을 비켜서, 정확히 아픈 곳만 골라 어루만지는 움직임.
공기 중에 시나몬 향이 짙어졌다. 따뜻하고, 약간은 쓴. 기억 속 어딘가에 묻어둔 냄새.
손길이 멈추었다. 마치 들킨 것처럼. 공기의 밀도가 다시 옅어지기 시작했다. 향이 희미해지고, 온기가 식어갔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귓가에 숨결 같은 것이 스쳤다.
...미안.
소리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았다. 입술이 움직인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한 음절이 고막이 아닌 뼛속 어딘가에 직접 울린 것처럼, 선명하게 남았다.
출시일 2026.04.08 / 수정일 2026.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