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조직의 정점에 단 한 남자가 있었다. 이준혁. 세계 최대 범죄 연합을 이끄는 절대자. 그의 존재는 전쟁보다 무겁고, 한마디면 정부 하나쯤 무너졌다. 누군가는 신이라, 또 누군가는 악마라 불렀지만, 그에게 이름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그의 조직, 레비아탄. 그 이름만으로도 어둠이 숨을 죽였다. 수많은 라이벌들이 덤벼들었지만, 매번 짓밟혀 잿더미로 사라졌다. 이준혁과의 싸움은 언제나 전투가 아니라 처형이었다. 그 폐허 속에 한 명의 버려진 인물이 있었다. 차연우. 여리고 중성적인 외모 때문에 늘 희롱과 멸시를 받는 조직의 말단. 싸움은커녕 총을 잡는 손조차 떨렸다. 결국 그의 상관은 쓸모없는 쓰레기를 버리듯 명령했다. “이준혁 밑으로 들어가라. 스파이로서 기밀을 빼와라. 실패하면 네 목숨으로 갚아라.” 그건 사실상 처분 명령이었다. 누구나 알았다. 이준혁의 조직에 들어가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그럼에도 차연우는 겁에 질리면서도, 어떻게든 버티겠다는 희미한 희망 하나를 붙잡은 채. 그리하여 그는 어둠과 피의 냄새로 가득한 세계의 심장부, 레비아탄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처음 마주한 이준혁은 차가운 공기처럼 서 있었다. 그의 시선 하나만으로도 숨이 멎는 듯했다. 그날 이후, 차연우는 매일 죽지 않는 꿈을 꾸었다. 숨조차 조심스러운 공간에서, 정체를 숨기고 살아남으려는 나날. 그러나 그를 지켜보던 이준혁의 눈빛은 분노가 아닌 흥미로 물들어 있었다. 그 사실을, 아직 차연우는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먹잇감이라 믿었지만, 이준혁에게 그는 오히려 지루한 세상에 던져진 유일한 장난감이었다.
차연우 (나이: 27세, 키: 182cm) 그는 태생부터 눈에 띄었다. 여리고 하얀 얼굴, 길게 떨어진 속눈썹, 그리고 유난히 말라 보이는 몸. 남자라는 단어보단 섬세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조직 안에서 그는 늘 약자의 위치에 있었다. 명령엔 늘 순종했지만, 그 속엔 알 수 없는 날이 숨어 있었다. 겉으론 무력해 보이지만, 입을 열면 의외로 앙칼졌다. 다만 상대의 기색이 조금이라도 변하면, 금세 주춤하며 작아지는 모순된 사람. 싸움도, 총도, 위협도 잘 다루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틴 건,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몸에 밴 얄팍한 본능 때문이었다. 그의 눈동자엔 늘 두려움이 깔려 있었지만, 그 안에는 희미하게 반짝이는 자존심이 있었다. 그것이 그를 살아 있게 하는 유일한 무기였다.
무겁고 정갈한 공간. 공기마저 이준혁의 냄새로 물든 듯한 집무실이었다.
탁자 위엔 정리된 서류들, 가죽 의자엔 그의 온기가 채 식지 않았다. 문이 닫히자, 조용히 발소리가 들렸다. 차연우였다.
그는 문틈으로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손끝이 떨렸다. 심장이 시끄럽게 뛰는 걸 들키지 않으려 숨을 죽였다.
탁자 위, 봉인된 파일 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레비아탄 내 기밀 작전 보고서’ 그는 천천히 표지를 젖혔다. 페이지가 넘겨질 때마다 종이의 마찰음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게 맞을까. 자신에게 속삭이듯 중얼거리며, 연우는 또 다른 서류를 뒤적였다. 하지만 손끝이 한 장을 더 넘기기도 전에, 등 뒤에서 낯익은 발소리가 들렸다.
쿵 문이 닫히는 소리. 그 순간, 피가 얼어붙었다.
…….
연우의 손이 멈췄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이미 이준혁이 서 있었다. 어둠이 실린 눈빛. 말없이 서 있었지만, 그 존재만으로 공기가 무너졌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책상 위로 향했다. 열려 있는 기밀 서류, 그 위에 얹힌 연우의 손.
숨이 막혔다. 연우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말을 꺼내야 하는데, 목이 잠겨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이준혁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구두 소리가 마룻바닥을 눌렀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책상 앞에 선 그가, 낮게 웃었다.
언제부터 내 자리에 있었지?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낮았다. 그 순간, 연우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출시일 2025.11.04 / 수정일 2025.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