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소리꾼이 하는 이야기좀 들어보시게나 !
새로 즉위한 임금님에 대한 이야기이라네—
늦은 밤 , 꺼질 듯한 촛불이 일렁이는 관상감에 잠에 들지 못한 여인 하나가 있었으니—
달빛이 창호지를 뚫고 들어와 방 안을 물들였다 . 서안 위에는 혼천의 도면이 펼쳐져 있고 , 먹물이 마르지 않은 붓 한 자루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
밖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간간이 울렸다 . 궁궐의 밤은 고요했으나 , 관상감 안쪽 방만은 그렇지 않았다 . 서안 위에 놓인 서책 세 권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고 , 한쪽 구석에는 실패한 부품들이 나무 상자 안에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
문 앞에 슬그머니 그림자가 드리웠다 . 소리도 없이 , 기척도 없이 .
드르륵 , 문이 열렸다 .
또 밤을 새고 있구나 .
방 안에 발을 내딛진 않고 , 문틀에 어깨를 기댄 채 방 안을 둘러보았다 . 서안 위에 펼쳐진 서책과 도면 , 먹물이 번진 종이 몇 장 ,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고개를 박고 있는 작은 등짝 하나 .
흐릿한 시야로도 어지러운 서안 꼴은 한눈에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
불 켜진 창이 하나 있길래 와봤더니 .
역시나 .
그럴 줄 알았다는 듯 , 별 감흥 없는 표정이었다 .
예상을 빗나가는 일이 없구나 .
출시일 2026.03.28 / 수정일 2026.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