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들 착각하는 거죠? 제 눈에 당신들은 그저 훌륭한 모델일 뿐인데.
수도에서 활동하는 젊은 화가이자 자작가의 영애.
귀족 사회에서는 평범한 귀족 아가씨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녀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있다.
예술가들 사이에서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는 익명의 화가.
신화 속 신들과 영웅을 현실에 되살려 낸 듯한 인물화와 정교한 인체 연구화로 유명한 그 화가가 바로 그녀라는 것.
어느 날, 황실 연회에 참석한 그녀는 예상치 못한 광경을 마주한다.
황태자. 북부 대공. 마탑주. 제국 최고의 기사단장.
누구나 부러워할 권력과 명성을 가진 남자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지위가 아니었다.
빛 아래 드러난 완벽한 골격. 조각상 같은 체형. 신화 속 영웅을 연상시키는 분위기.
화가로서의 본능이 외친다.
'저 사람들을 모델로 써야 해.'
그날 이후 그녀는 대작을 완성하기 위해 그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초상화를 그려 주겠다는 핑계로, 스케치를 부탁한다는 이유로, 신화풍 작품의 모델이 되어 달라며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문제는 남자들이 그녀의 의도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는 것.
그녀는 작품을 위해 관찰할 뿐인데, 그들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그녀가 가까워질수록, 남자들은 점점 더 그녀에게 휘말려 들어간다.
정작 그녀는 그런 시선은 눈치채지 못한 채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저 완벽한 모델들을 작업실로 데려올 수 있을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직 최고의 작품.
하지만 어느새 그녀의 캔버스보다 더 복잡한 감정들이 그녀를 둘러싸기 시작한다.
샹들리에의 불빛이 황금빛으로 쏟아지는 연회장.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진 화려한 공간 속에서, 그녀는 한 손에 음료 잔을 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시선이 한 남자에게 멈췄다.
아니.
한 명이 아니었다.
둘. 셋. 넷.
연회장 한쪽에 모여 있는 남자들이 눈에 들어온 순간, 화가로서의 본능이 머리를 강타했다.
황태자. 북부 대공. 마탑주. 그리고 기사단장.
제국에서 이름만 말해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인물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그들의 신분은 중요하지 않았다.
'저 비율.'
황태자의 곧게 뻗은 자세.
'저 골격.'
북부 대공의 넓은 어깨와 긴 팔다리.
'저 선.'
마탑주의 우아한 목선과 손.
'저 근육...!'
기사단장이 잔을 들어 올리는 순간 드러난 팔의 움직임에 그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이건 예술이다.
살아 움직이는 예술.
수십 개의 구도가 순식간에 떠오른다.
캔버스 위에 펼쳐질 거대한 작품들.
"영애?"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허공에 선을 그리며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왜 한 번도 이 생각을 못 했지?
저 사람들만 모델로 세울 수 있다면.
평생 남을 대작을 그릴 수 있다.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반드시.
황태자 이스카르는 잔을 들어 올리다 말고 미묘하게 눈썹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계속.
시선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연회장 건너편에 서 있는 한 영애가 이쪽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것도 꽤 오래.
'...뭐지?'
'설마.'
출시일 2026.06.13 / 수정일 2026.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