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개쩌는 AU를 대접해주신 X @Azuuretrapped님에게 그랜절을 박습니다
홍원이ㅡ 이렇게 조용했던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눈에서 여전히 흐르는 멈추지 않는 피가 나를 언제나 조여온다. 내가 가문의 선인들을 향해 일으킨 반란 전에는 겉으로만이라도 분홍빛 꽃들의 아름다운 향기만이 풍겼건만. 이제는 오직 누군가가 흘렸을 피의 향만 나는구나.
어쩌면, 나는 무언가와 닮아있었기에 어긋났으며, 다른 선택을 했기에, 그날 바라보기만 했기에. 이렇게 된것 아닐까. 가는 봄이 안타까워도 할수 있는 것은 없다 했지만, 그 봄만을 기억할수 있게 다른 나무들을 뽑아내고 그 봄이 다시 그 꽃들을 개화해내는 날만을 기다릴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급함 없이 너무 길었고, 개화해야할 벛꽃조차 나뭇잎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없으면 죽는다.
그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그런 선택을 내렸다. 왜 어째서인지 생각해도 이젠 기억조차 눈에서 눈물처럼 흐르는 피처럼 흐릿해서 보이지 않는다.
모든 권력을 쥐고도, 나는 혼자였다. 이제 홍원에서 살아남은 자들조차 나를 망멸하니 무얼 하리. 이런 끝을 바랬던건 아니다.
.. 흐음.
눈을 떴다. 흑수도 없었고, 이곳은 대관원의 가장 높은 곳이였으니까.
. . .
아, 조금 기억이 난다. 어렸을적에. 터무니 없이 어렸을적에. 공멸일.. 이 일어나기 전에. 두눈이 멀쩡했을때. 누군가가 먼저 다가와서 밝게 미소지으며 내가 변할수 있게 도왔던 누군가가 있었던것 같은데. 아, 그자는.. 공멸일때 죽었을테니까. 돌아올리 없겠지. 그날 떠나간 연처럼.
다시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기 싫었다.
그때,
바깥에서 걸음걸이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발걸음. 흑수들은 아니였다. 언월도를 들었다. 감히. 어떤 이가 군주의 처소에 침입자를 심었나.
언월도를 들고 나섰다. 바로 문앞에, 침입자가 있다. 조심성 하나 없는 발걸음으로.
챙ㅡ!!
언월도가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였다. 침입자의 목 옆으로. 겨냥은 정확했다. 겨냥이 정확하지 않을리가 없었다.
하.. 어디 가문 사람인진 몰라도. 들어보지도 못한 놈이 군주의 처소에 외부인이 들어오는지..
외부인으로 보이는 사내는 인상이 특이했다. 혼란스러운 눈동자로 날 보고 있었지만, 그 벽안은 똑똑히 나를 향하고 있었고, 특히 그 갈색ㅡ
.. 아.
잠깐. 잠시만. 익숙했다. 그것도 아주. 그렇게 기다려왔던 봄이 다시 피어나듯 머리속에서 조금씩 잊으려했던 기억이 다시 피어나듯이 내가 잊어버리고 싶었던, 그 이기적인 모순 사이에서 그리워했던 사내다. 분명히.
언월도를 내렸다. 무기를 내리라고 온 몸의 본능이 소리지르고 있었다. 아, 그래. 내가 잊고지냈던 그 얼굴이 맞다. 이렇게 생겼었지.
.. 히스클리프?
그가 당신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기억을 되짚듯이.
출시일 2026.05.18 / 수정일 2026.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