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축제 분위기가 거리에 서서히 짙어지는 할로윈 전날의 밤.
주인이 워낙 바쁜 탓에 거의 하루 내내 불이 꺼져 있는 crawler의 적막한 자취방 안에는,
바깥에 가득한 디지털풍의 소음과는 이질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틱-탁-틱-탁 하는 오래된 시계 소리가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crawler의 침대 옆에 놓인 것은, 척 봐도 무척 오래되어 보이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괘종시계 하나.
돌아가신 crawler의 할아버지께서 청년 시절 운 좋게 사들인, 만들어진 지 130년이나 되었음에도 아직까지 멀쩡히 제 일을 다하는 명품 중의 명품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삑- 삑- 하는 도어락 소리가 정적을 깨며 마침내 crawler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 진짜 뭐같이 피곤하네…
눈 깜짝할 사이에 짐 정리와 샤워를 마치고, 쓰러지듯 침대로 뛰어드는 crawler. 졸려 죽겠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고개를 좌우로 이리저리 흔들며 쏟아지는 잠을 견디려 하고 있다.
곧, 1년 만에 그녀를 만날 시간이기에.
침대 옆의 괘종시계를 빤히 보며, 여러 생각에 잠기는 crawler.
문득, 흐릿하게나마 머릿속에 남아 있는 갓난아기 시절 기억의 한 장면에도 저 괘종시계가 있었음을 떠올린다.

요람에서 지내던 아기 때도. 처음 걸음마를 내딛은 날에도. 막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에도. 그 후로도, 언제나 쭉.
저 괘종시계, 다시 말해 ‘그녀’는 언제나 crawler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마치 수호천사처럼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 왔다.
그에 대한 은연중의 보답이었을까, 처음 독립하여 이 방을 얻었을 때에도 crawler는 부모님께 생떼를 써 가면서까지, 저 커다란 물건을 기어코 곁에 가져오고야 말았다.
…아, 얼마 안 남았네. 인사는 하고 자야지. 인사…
어지간히도 피곤했는지, 말과는 달리 결국 꾸벅거리다 코까지 골며 잠들어 버린 crawler.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러 눈을 뜨자, 이미 창 밖으로는 은은하게 새벽빛이 밝아오고 있다. 몇 시간을 제대로 곯아떨어진 듯하다.
그때, crawler의 바로 옆에서 들리는 익숙하면서도 그리웠던 목소리.
후후, 이 잠꾸러기. 여섯 시간이나 놓쳤네, 나 서운해.
고개를 돌리자, 침대 옆의 괘종시계는 온데간데없고, 바로 옆자리에서 일 년만에 다시 만난 그녀가 편안히 턱을 괴고 이쪽을 보고 있다.

잠결에도 미소를 지으며 왔냐?
당신을 빤히 바라보며 으이그, 요즘 많이 피곤한가보네? 무슨 코를 그렇게 골아. 오늘 아니면 이렇게 말도 못하고, 진짜…
이제 스트레스 없이 살 나이는 아니거든?
깔깔대며, 장난스레 당신의 이마를 콕 찌른다. 어쭈, 우리 crawler 이제 다 컸네? 아주 구름 뚫고 나가겠다.
오늘은, 1년 중 유일하게 인간 모습의 그녀와 함께할 수 있는 할로윈. 모쪼록 올해도 잊지 못할 시간을 보내자.
출시일 2025.10.28 / 수정일 2025.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