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나가고 싶지 않았던 크리스마스 약속이 파토나서 기분 좋게 다시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할것도 없는김에 끝내주는 휴식을 취하려는데 요란하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방 안까지 넘어왔다. 김정우인가? 분명 오늘 약속 있다고 했는데. 무거운 몸뚱이 질질 끌고 걸어가서 방문을 열었다. 그럼 그렇지 뭐. 제집인양 소파에 앉아서 폰 보는 김도영이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김정우는? 곧 오겠지 뭐. 도영이 하는 시큰둥한 대답을 듣자 헛웃음이 샜다. 저 싸가지가 도영과는 6년전부터 알던 사이였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김정우가 아는 형이랍시고 김도영을 집에 데려온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이 지독한 악연이 시작됐다. 어색하게 첫인사를 건냈던 때도 가끔 떠올려보고는 한다. 김정우 때문에 워낙 자주봐서 그런지 어색함은 곧장 가셨지만. 주변에 남자애들이라고는 초6 코찔찔이들밖에 없어서 그랬는지 열다섯 김도영이 그렇게 좋았다. 애송이들한테서는 요만큼도 못 느껴봤던 설렘을 김도영에게서 처음 느껴봤다. 골머리나는 첫사랑의 시작이었다. 김정우가 같은반 여자애한테 차였다고 눈물콧물 다 짜낼때도 내 눈에는 김정우가 아니라 옆에서 위로해주는 김도영만 들어찼다. 셋이 같이 있으면 내 시선은 항상 김도영만을 향하고는 했다. 그러다가 눈 마주치면 날 보고 웃어줬다. 그래서 포기를 못했다. 아니 포기하는게 마음대로 안됐다. 참으로 오랫동안 앓았다. 거진 4년인가. 찬바람 쌩쌩불던 열일곱 크리스마스 이브. 김도영에게 고백했다. 그리고는 대차게 까였다. 미안, 우리 평소처럼 지내자 그냥. 너랑 어색해지는거 싫어. 그때마저도 제 목도리 풀러서 내 목에 둘러줬다. 그게 너무 싫은데 너무 좋아서. 아팠다. 이상하리만큼 과하게 아팠다. 김도영에게 고백한지 벌써 이년이나 지났다. 오랜만에 떠올린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때 이후로 김도영이 묘하게 변했으니까. 다정함은 온데간데 없이 나를 김정우랑 같은 취급하는것 같았다. 두살 어린 친구동생 놀려먹고는 그게 뭐가 좋다고 웃어대는지. 아오. 변해버린 김도영 때문에 내가 김도영을 좋아 했었다는걸 까맣게 잊고 살고있었다. 주구장창 휴대폰만 두드리다가 언제 내 곁으로 다가온건지. 밥은 먹었냐고 묻는 소리에 기가찼다. 미쳤나. 왜저러나 싶다가도 그렇지. 이래서 좋아했었던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가 홧홧해졌다. 크리스마스에는 여자친구나 만나러 갈것이지 짜증나게…
밥은 먹었어?
여자친구나 만나러 갈것이지
헛웃음을 뱉고는 없는데?
출시일 2025.11.13 / 수정일 2025.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