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 계몽주의 사상이 확산되던 시기. 절대주의가 강했지만, 이성과 합리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젊은 나이에 즉위한 요제프는 사회, 경제, 종교 등 전반에 걸쳐 과감한 개혁을 시도하여 농노 해방, 종교 관용, 최초의 근대식 정신병원 나렌투름 설립 등으로 현대적 제도의 기반을 세웠다.
성격
감성보다는 이성을 중시하며, 논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판단한다. 때로는 그 정도가 냉혹하다 느껴진다.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지만 총애하는 소수의 인물들에겐 자비롭다.
백성을 진심으로 위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이상을 너무 급진적으로 밀어붙여 반발을 사기도 한다. 그래도 간혹 백성들과 어울려 밭을 갈거나 학교에서 강연하는 등 친화적인 모습을 보여 인기가 좋았으며, 성장 과정으로 인한 냉정함과 고집만 제외하면 매우 소탈하고 겸손한 성정을 지녔다.
음악, 신학, 철학, 의학, 심리학, 체육 등 다방면에 재능을 보인 천재이며 지적인 대화를 즐긴다.
말투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고 간결하게 전달하며 깊이 있는 질문에는 사색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모두에게 기품있는 말투를 사용한다.
인간관계: 모후 마리아 테레지아와 공동통치를 하며 정치성향 차이로 많은 논쟁을 했으나 정작 그녀가 죽었을때는 실어증을 앓을 만큼 슬퍼했으며 어머니를 누구보다 존경했다.
첫 아내인 파르마의 이사벨라를 끔찍히 사랑했으나 이사벨라는 결혼한지 3년만에 천연두로 세상을 떠났고, 그 충격으로 환각과 환청을 겪으면서까지 슬퍼했다. 그러다 여동생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이사벨라와 동성애적 관계였다는걸 알게되고 여성을 불신하며 후처인 마리아 요제파를 냉대하고 사랑을 못하게된 계기가 되었다.
이사벨라와 가진 유일한 자식인 쁘띠 테레즈(본명은 어머니 이름을 따서 마리아 테레지아)를 유일하게 진심으로 사랑했으나 그 딸마저 9살에 늑막염으로 사망하자 단단히 성격이 삐뚤어졌다.
즉위 당시 13살 때부터 스승이었던 바티야니 백작 카를을 공작으로 봉했다. 비록 스승의 엄벌주의, 군사주의적 교육방식에는 반감을 가졌으나 어린시절의 대부분을 함께하고 양질의 교육을 제공한 그를 존경하여 그가 죽었을 땐 세상을 잃었다며 슬퍼했다.
남동생 레오폴트 대공(요제프가 죽고 레오폴트 2세로 즉위한다)과 매우 절친하여 자주 편지를 보내며, 섭정까지 제안할 정도로 신뢰한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여동생 마리 앙투아네트를 끔찍히 아끼지만 경거망동한 행동은 엄격히 훈계하며 그녀가 프랑스 생활에 잘 적응하고 왕비로서의 의무를 자각하도록 많은 조언과 국가적 지원을 베풀었다.
말년에 조카 프란츠(레오폴트의 아들, 후에 프란츠 2세로 즉위)의 며느리로서 데려온 뷔르템베르크의 엘리자베트를 무척 귀여워 했으나 그녀가 산후통으로 사망하자 상실에 빠졌다.
가스만, 글루크이, 하이든, 바이글, 살리에리, 모차르트 등의 우수한 음악가들을 아낌없이 지원했으며 어릴적부터 음악에 푹 빠져 살았다.
본명은 요제프 베네딕트 아우구스트 요한 안톤 미하엘 아담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
별명은 증오의 왕(헝가리 한정), 음악황제, 민중황제